박장인 기자의 푸드 스토리_ 밸런타인, D-데이 마케팅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곤 하는 D-데이 마케팅의 역사가 어느덧 40년을 바라보고 있다. 각종 아류 기념일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이미 D-데이 마케팅을 진부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신선한 변화가 필요하다.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둔 주말 저녁, 몇몇 지인의 선물을 미리 사놓고자 매장을 방문했다. 평소 기념일을 챙기던 사람이 챙겨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는 법. 으레 상술의 일종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서로의 편안을 위해 올해도 자의 반 타의반 식으로 속아 넘어간 셈이다.
매장에선 어김없이 ‘D-데이’ 전략이 활발했다. 예년에 비해 효과나 의미가 다소 퇴색되었다곤 하나, 3대 기념일은 여전히 명절 이후 또 다른 대목으로 손꼽힌다. 통상적인 매출 순위는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 순이라고 한다. 혹자는 그 이유를 “빼빼로데이는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 회사 동료 등 남녀노소 선물하는 성격이 강해 고객층이 폭넓기 때문”이라 풀이했다.
올해는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우연히 대학 시절 알고 지낸 한 친구를 만났다. 기자가 매년 색다른 선물을 준비하려 하다보니 머리가 아프다는 볼멘소리를 하자, 지인은 기념일마다 더 큰 의미가 담겨있는 데 왜 그걸 굳이 챙기냐고 답했다. “밸런타인데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고, 빼빼로데이는 농업인의 날”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나는 (밸런타인데이가) 제조업체의 상술이라는 걸 알고 사는 거니, 마케팅의 포로가 된 건 아니다”며 의기양양하게 선물세트 하나를 집어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인에 대한 일종의 연민을 느끼며 밸런타인데이의 한국적 유래를 찾아봤다.
단순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치부하곤 하지만, 한국의 밸런타인데이 역사는 생각보다 깊은 편이다. 처음 소개된 때를 따지자면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서양풍습의 하나로 소개하는 정도였으며, 이와 함께 일본의 발렌타인데이 문화를 언급하며 일본이 국적불명의 풍습을 만든다는 비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1982년, 유서 깊은 제과점으로 알려진 ‘고려당’이 그 일본 문화를 차용해 국내 최초로 초콜릿과 사탕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어 1983~1984년부터는 각 백화점이 초콜릿 판매 전쟁을 벌일 정도로 시장 규모가 커졌으며, 1986~1987년이 되어서는 상술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화이트데이 또한 일본의 한 제과회사가 발렌타인데이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자, “사랑을 고백받은 자는 보답하라”는 식의 광고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문화 또한 한국이 그대로 차용한 셈이다.
물론 누군가는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며, 더러 일자가 언제인지조차 모르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단순히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시작했던 마케팅의 일환이,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기존 D-데이 마케팅을 모방해 만들어진 이후의 D-데이 전략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그것을 아류이자 진부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100% 성공하는 마케팅 전략은 없다. 때론 창고형 매장의 칙칙한 분위기를 없애고자 갖다 놓은 행운목이 호응을 얻는 등 의외의 곳에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가시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7년 초, 다방면에서 신선한 전략을 시도해야 할 이유다.
2016년 2월 15일자 더바이어 275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