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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Feb 09. 2018

떡국과 닭의 슬픔

박장인 기자의 푸드 스토리_ 떡국

설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 떡국. 또 나이를 먹는다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사람들은 떡국에 수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다란 가래떡엔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엽전처럼 썰어낸 모양엔 재화가 풍족하길 바라는 소망, 흰 색깔에는 한 해를 밝게 보내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한다. 새롭게 시작하며 한 해가 잘풀리길 바라는 인간 모두의 염원이, 떡국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다.
   




새해를 맞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고개를 들어보니 1월의 반이 흘러가 있다. 업계 역시 민족 대명절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고심했던 패키지를 아낌없이 선보이고픈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모두가 분주히 움직인다. 가깝게는 명절 준비로, 조금 멀게는 1년의 계획을 다잡기 위해서이리라. 10년, 혹은 그 이상을 준비하는 사람은 드물어 보인다.


가정 간편식을 테마로 바쁘게 이번 호를 준비하는 도중, 지인으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명절 때 먹으라며 떡국 선물쿠폰을 보내온 것이었다. 내용을 보니 간편히 집에서 해먹을 수 있도록 제작된 HMR 형태의 떡국이었다. 새삼스레 HMR 상품이 이미 사회적 트렌드가 되어있음을 실감했다. 패키지 이름도 재미있다. 먹으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나. 아직 나이를 거꾸로 먹을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거꾸로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문득 떡국과 나이가 어떻게 결부되었는지 궁금해져, 잠시 유래를 찾아보기로 했다.



은 정말 보다 나을까?


예로부터 한·중·일 3국은 정월 초하루면 어김없이 곡식을 빻아 만든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다만 국가별 주요 농사가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설 음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벼농사 위주인 한국은 떡국을 끓여 먹었고, 밀을 주로 재배한 중국 북부에선 만두를 빚었으며, 찹쌀을 많이 재배한 일본은 찹쌀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떡국엔 크게 3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하나는 음복적 성격이다. 설은 음력 기준 새해 첫 날로, 새 시작과 함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자는 의미에서 맑은 물에 흰색 떡을 넣은 국을 먹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떡국은 백탕이나 병탕으로 불렸다. 떡국의 겉모양이 희다고 해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병탕(餠湯)이라고 한 것이다.


한편 열양세시기에선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 ‘몇 살이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는데, 떡국을 먹으며 나이를 먹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쓰는 ‘꿩 대신 닭’이라는 표현 역시 떡국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떡국을 끓일 때는 양지머리를 고아낸 육수나 맑은 장국을 사용하지만, 소가 중요했던 농경사회 시절에는 꿩고기로 육수를 내 떡국을 끓였다고 한다. 그런데 꿩을 사냥하기가 힘들어, 대신해서 택한 것이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닭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은, 결국 ‘꿩고기’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구할 수 없어 마지 못해 ‘닭고기’를 썼다는 의미가 내재돼 있다. 당초 옛 사람들이 꿩을 원했던 이유가, 정말로 꿩고기가 닭고기를 넣었을 때보다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흔히 먹어볼 수 없는 귀한 고기였기에, 그만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까?


문득 꿩고기가 정말로 더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단지 보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닭’이 이토록 말썽을 피우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소중함을 알아달라는 하나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2016년 1월 15일자 더바이어 273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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