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기자의 프랑스 푸드 투어_ 크리스마스 마켓
12월이 되면 프랑스의 거리가 활발해진다. 반짝이는 조명과 통나무 상점 등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추운 바람을 타고 퍼지는 달콤한 뱅쇼(VIN CHAUD) 향은 거리를 와인색으로 물들인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가 사순절 기간이었다.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부활절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마다 노란색과 붉은색의 토끼와 병아리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우리와 ‘명절’이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
막셰 드 노엘(이하 크리스마스 마켓)도 이와 상통한다. 예수가 태어난 날인 12월 25일 전, 약 한 달 동안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대림절 기간이다.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 시작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제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유럽의 축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대부분 광장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열리지만 특유의 분위기는 골목 구석구석에서도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이 가장 유명하지만 프랑스 역시 빠지지 않는다. 특히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 최고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독일과도 인접해 있어 감자튀김과 독일식 핫도그, 양배추 절임 등 독일식 요리도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마켓이다.
파리에서는 대형 크리스마스 마켓이 세 곳에서 열린다. 샹젤리제, 라데팡스, 트로카데로다. 그중 현지인이든 관광객이든 으뜸으로 치는 곳이 샹젤리제다. 콩코드광장부터 약 2km 거리 양쪽에 약 200여개의 통나무집이 줄지어 들어선다. 어린이들을 위한 미니 어드벤처와 아이스 스케이트장도 꾸려진다. 핫도그나 크레이프 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뿐 아니라 막셰 구르멍이라는 푸드코트도 만들어진다. 요리를 주문하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일종의 포장마차다.
요리도 다양하다. 푸아그라, 그라탱 등 요리부터 치즈나 잠봉 등 와인과 즐길 수 있는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마켓은 오후 2시가 넘어가면 하나둘 문을 열고, 5시 이후 거리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걷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도 어린아이의 사고 한 번 안 날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파리 내에서 소규모임에도 유명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생제르망 데프레다. 옛 문호들이 모여 정치와 문학을 토론했고, 지금도 귀족이 사는 동네답게 작더라도 장인들이 모이는 정통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샹젤리제가 관광객이 많다면 이곳은 프랑스인들이 주를 이룬다. 도시마다 조그맣게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놓치기 아쉽다. 오베르쉬르우아즈와 같이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서도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빵을 썰고, 와인을 내놓는다. 오히려 정이 더 깊다. 샹젤리제가 판매를 위한 곳이라면 시골마을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일이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크레이프나 핫도그를 먹으면서 즐긴다. 이때 손에 꼭 들려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뱅쇼다.
우리나라에서도 뱅쇼는 많이 알려져 있다. 뱅쇼는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적포도주에 레몬과 오렌지, 계피, 설탕, 꿀을 넣고 끓인다. 와인을 오랜 시간 끓여내 대부분의 알코올을 날려버려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다. 2세기 로마에서 와인에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 것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1390년경 중세 요리책에 처음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감기를 예방하는 등 추운 겨울 날씨에 몸을 덥히기 위해 마셨던 음료로 현재에 와서 뱅쇼는 유럽의 겨울,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음료가 되었다. 뱅쇼는 사용하는 와인이나 과일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어머니의 음식처럼 집집마다 맛이 다른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여러 통나무집의 뱅쇼를 즐기다 보면 그 맛의 오묘함에 빠져든다. 마켓에서의 뱅쇼 가격은 컵 보증금을 합쳐서 3유로다. 컵을 사서 마시고, 돌려주면 돈을 받는다. 그래서 1유로에도 즐길 수 있다. 싸구려 와인으로 이토록 멋진 축제를 즐길 수 있다니, 레드와인에 더해진 시트러스의 새콤함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2016년 12월 15일자 더바이어 271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