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기자의 프랑스 푸드 투어_ 바게뜨
처음 프랑스에서 바게뜨를 사먹은 기억은 집주인을 따라갔던 ‘리베르떼(Liberté)’블랑제리(빵집)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인이라고는 1년에 한두명 마주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첫 바게뜨를 먹었다.
프랑스 빵집에서 빵을 구매할 때는 재밌는 광경이 많다. 리베르떼는 역 부근에 있는 빵집이 아니어서 동네 사람들이 주고객이었다. 출근길보다는 퇴근길이나 주말 오전에 길게 선 줄을 볼 수 있었다. 역 근처 빵집에는 보통 출근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프랑스 빵집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점원에게 원하는 빵을 말하면 점원이 담아준다. 그래서 초기에는 빵 사먹을 때도 프랑스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좌절했던 적도 있고, 실수해서 다른 빵을 먹은 적도 많았다.
아무튼 폴이나 브리오쉬 도레와 같이 아르바이트생이 많은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닌 동네 빵집에서는 꼼짝없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평일 오전에는 부부가 나와서 한 명은 포장하고 한 명은 계산한다. 주말에는 부부 중 한 명만 가게를 지키면서 빵을 담고 계산한다. 긴 줄에 때로는 5분 이상 기다려야 해서 지루하기도 하지만 앞선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보다 더 재밌는 일도 없다.
깜빠뉴를 구매하는 아주머니는 마치 고기처럼 원하는 부위를 말한다. 깜빠뉴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훔친 빵으로 프랑스에서는 브리오슈와 함께 대표적인 식사용 빵이다. 원래 크기는 성인이 머리 위로 팔을 뻗어 둥글게 원을 그리는 크기지만 작게는 9조각, 크게는 6조각으로 잘라서 판매한다. 딱딱하게 구운 부분을 좋아하면 귀퉁이조각을 달라고 하고, 부드러운 빵을 좋아하면 중간 조각을 달라고 한다. 알뜰한 프랑스인은 빵을 살펴보고는 더 큰 조각을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견과류가 들어간 깜빠뉴를 살 때는 견과류가 더 많이 들어있는 조각을 확인하기도 한다. 점원은 자르고 난 후 보여주면서 괜찮은지 묻기도 한다.
에스카르고 레젱도 프랑스인들이 아침으로 자주 사먹는 빵 중 하나다. 달팽이라는 의미의 에스카르고라는 단어와 건포도를 뜻하는 레쟁이 합쳐진 건포도 달팽이 빵이다. 빵집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중장년층 남성들이 유난히 에스카르고 레젱을 주문한다.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빵은 쇼‘ 송 오 뽐므’, 애플파이다. 그리고 누군가 애플파이가 가장 맛있는 빵집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으면 주저 없이 폴을 말한다. 바삭한 껍질에 진한 사과잼이 듬뿍 들어 있고,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의 맛도 좋다. 먹게 된 계기도 재밌다. 점심으로 폴 샌드위치를 자주 먹는다는 필자의 말에 그곳에서는 애플파이를 먹으라고 프랑스 친구가 조언했다. 프랑스인들은 프랜차이즈 빵집을 매우 싫어하지만 폴의 애플파이만큼은 암묵적으로 인정한다고도 했다.
바게뜨를 어떻게 먹을까?
집 근처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바게뜨 대회에서 1위한 빵집이 있었다. 저녁 7시에 가보면 이미 모두 소진되어서 문이 닫혀 있다. 오전에는 8시에 문을 여는데, 그 전부터 문 앞에 긴 줄이 있다. 상을 탔다던 그 집 바게뜨는 바삭하면서도 쫀득했다. 차지다는 말이 찰떡같이 어울렸다.
프랑스에는 여러 종류의 바게뜨가 있다. 굵기, 길이 등에 따라 맛도 다르고 종류도 10여개가 넘는다. 우리가 보통 바게뜨라고 알고 있는 빵은 프랑스에서도 바게뜨라고 부른다. 그러나 프랑스 레스토랑이나 여행 중 프랑스인이 내주는 바게뜨를 먹었을 때 익히 알고 있던 맛과는 다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숙성을 더 오래해서 속이 쫄깃쫄깃하고, 위에 곡물가루를 뿌린 ‘바게뜨 트라디시옹’을 먹었을 것이다. 참고로 가늘고 짧은 길이의 바게트는 ‘피셀’이라고 부르며, 메밀로 만든 바게뜨는 ‘깜빠뉴’라고 부른다.
바게뜨 한 개를 다 못 먹겠다면 ‘윈 드미-바게뜨, 실부플레(Une demi-baguette, S.V.P. 바게뜨 반쪽 주세요)’라고 말하면 바게뜨를 반으로 썰어 준다. 가격도 반만 받는다. 만약 썰어놓은 반쪽을 준다면 ‘누보 앙, 실부플레(Nouveau un, S.V.P. 새 것으로 주세요)’라고 말하면 새 바게뜨를 썰어주기도 한다. 물론 사데팡(Ça depend, 그때그때 다르다)이다.
2017년 2월 1일자 더바이어 274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