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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May 28. 2018

노하우엔 최초가 필요 없다

박장인 기자의 푸드 스토리_ 최초

최초라는 용어엔 묘한 힘이 있다. 업계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업체들이 끊임없이 최초라는 포지셔닝을 찾아 나서는 이유다. 
아무도 두번째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최초에 연연하지 않고, 전통의 강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동시에 인공지능 마케팅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정보의 홍수로 선택의 피로를 느끼는 소비자들을 위해, 방대한 구매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쇼핑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롯데백화점이 최초라고 말하고, 한편에서는 신세계백화점이 최초라고 언급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다음날 ‘S마인드’라는 인공지능 고객분석 시스템을 선보였고, 롯데백화점은 올(2017년) 12월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으니 우선 최초로 선보인 것은 신세계백화점이 맞다고 여기는 눈치다.

‘최초’라는 용어엔 묘한 힘이 있다. 업계를 불문하고 최초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최초라는 단어가 사람의 인식에 강렬히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최‘ 초’나 유‘ 일’과 같은 표현에 혹할 때가 있다.

우연찮게도 이번호를 준비하며 만났던 두 업체는 모두 최초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인증 카카오닙스를 취급한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대표가 국내 최초의 HMR 관련 전문서적을 출판했다는 것이었다.

취재 중 자연스레 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들이 말하는 최초에는 사뭇 다른 성질이 엿보였다. 통상 수입식품업계에서는 홈쇼핑 채널에 10개의 상품을 론칭했을 시 그중 2개 정도만 성공해도 대박이 났다고 표현한다. 한번 방송을 탄 뒤 그대로 사장되어 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실패했을 경우엔 5억원대 이상의 손해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수입식품업계에서는 국내에 아직 유통되지 않은 제품을 최초로 들여오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나, 국내 정서에 맞는 상품 발굴을 우선시한다. 한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통·제조업체의 욕심으로 최초의 상품을 론칭해봤자, 이미 소비자가 선택하는 시기라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HMR 전문서적을 출간한 대표 역시 최초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쳤다. 따지고 보면 이미 수년 전에 김밥에 관한 서적이 출판된 적도 있어, 괜히 최초라는 표현을 해봤자 딱히 득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기존 서적들이 기초적인 수준이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최초를 마다하는 대표들을 접하며, 문득 최초·유일이라는 용어 자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이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력이 될 순 있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하다. 동일한 내용일지라도 관점에 따라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먹거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자는 향후 식품·유통업계에서 가장 먼저 이에 관한 충격이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국내 유일의 식품·유통 전문지를 표방한 더바이어가 어느덧 창간 11주년을 맞이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 그간 더바이어는 유일·최초라는 표현에 기대어 있지만은 않았는지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두 백화점의 AI 서비스 경쟁 결과가 궁금하다.


2017년 4월 1일자 더바이어 278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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