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과일은 눈으로 맛을 안다, 안정적 판로 확보가 경쟁력
신선식품이 산지에서 소비지로 도착하기까지 적어도 2~3회 유통단계를 거친다. 그 중간단계에 중도매인이 있다. 중도매인은 농수산물도매시장 및 공판장에 상장된 농수산물을 경매를 통해 소매상에 중개한다. 그들은 유통업체, 중소형 슈퍼마켓, 외식업소 등 다양한 거래처를 두고, 그에 맞는 상품을 경매에서 낙찰 받아 유통한다. 특히 유통업체와 같은 대형 거래처와 장기거래를 하는 중도매인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전국의 농수산물이 모이는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이곳에서 최고의 중도매인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청과 소속 중도매인 업체인 후르츠사계절은 겨울에는 사과, 여름에는 수박 등 국산과일을 전문으로 유통한다. 안우식 후르츠사계절 대표는 사과 농사를 겸하며 산지, 바이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농산물 거래에 활용한다.
안우식 후르츠사계절 대표는 1977년 용산시장의 서울상회 직원 근무를 시작으로 도매업에 몸담았다. 1992년 사계절상회로 독립하고 2007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후르츠사계절로 상호를 변경했다. 후르츠사계절은 현재 현대백화점 10여개 점포와 현대마트, 한샘마트, 그린팜마트 등 중대형 마트 6개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현재 매출은 연 80억원 규모다. 안 대표는 “법인으로 전환할 즈음부터 외상이 큰 업체와의 거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며 “130억 규모의 매출을 올린 적도 있지만 그 만큼 손해도 컸다”고 말했다. 추석, 설 등 명절에 외상 거래가 주로 발생하는데, 소매업체에서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면 할인 판매로 전환해버려 그 손해는 그대로 중도매인에게 돌아온다. 안 대표는 “대형마트의 할인 행사로 인한 가격 변동, 임대료 등 중소형 마트에게 난점이 많다”며 “물건의 품질이 좋아도 중소형 마트는 살아남기 어려운 유통구조”라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소형 마트의 거래에서는 서로 이익을 창출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안 대표는 “중소형 마트는 세일 행사에서 적정가를 유지하면서 중도매인과의 손익도 계산해야한다”며 “한번 큰 세일을 한 업체는 소비자들이 세일할 때만 구매한다”고 말했다. 이에 행사가도 중도형 업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해야한다고 보았다. 그는 똑같이 손해를 보는 업체여도 손해 사실을 통보로 전달하는 업체와는 거래를 이어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후르츠사계절의 수박은 백화점에 주로 납품한다. 현대백화점과는 2009년부터 거래하고 있다. 그는 좋은 상품이 없다면 납품하지 않는 등 까다로운 품질 관리가 장기거래의 비결이라 말한다. 안 대표는 “거래 업체들에게 인지도가 높고 불만이 적어 서울청과가 현대백화점에 후르츠사계절을 추천했다”며 “손해를 보더라도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방침”이라 말한다. 일례로 여름에는 복날에 백화점에서 선물용 수박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강우량이 많아 현대백화점 기준인 14브릭스 이상을 만족하는 수박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안 대표는 “상품의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바이어에게 상품을 제공할 수 없다고 알린다”며 “바이어와 논의 후 대체 상품을 보낼 수는 있어도 상품의 품질을 속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 판매는 단기적으로는 이익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손해다. 품질이 좋지 않으면 판매하지 않는 안 대표의 스타일을 알기에 후르츠사계절의 거래 농장도 상품성이 낮으면 상품을 공급하지 않으려 한다.
안 대표는 청송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며 농작물에 들어가는 인건비에 비해 소비가격이 좋지 못한 것을 느꼈다. 그에 따르면 사과 과수원의 인건비는 남자 인부가 12만원, 여자 인부가 8만원이다. 사과가 다른 농작물에 비해 소비가격이 좋은 편이지만 인건비를 고려하면 타산이 안 맞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상품의 품질에 맞는 적정가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안 대표는 “표면에 점이 생겨도 맛있는 상품이 있다”며 “맛에 떳떳하기에 후르츠사계절에 B급 사과를 주문하는 업체, 개인도 많다”고 말한다. B급 사과는 주로 중대형 마트에 납품하는데 B급이어도 맛이 좋아 소매업체들이 정가에 거래한다. 이어 “사과는 2월까지는 상품의 차이가 나지 않지만 3월부터는 표시가 난다”며 “후르츠사계절이 취급하는 사과는 산지의 수확 단계부터 달라 3월에 먹어도 푸석하지 않고 맛있다”고 강조했다. 후르츠사계절은 작년 11월 초부터 올해 4월 초까지 주 1.2톤 규모로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안 대표는 2014년부터 25대, 26대 서울청과 과실부 중도매인 조합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 등으로 농산물의 직거래가 빠르게 활성화되는 것이 도매시장과 중도매인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산지직송 물량은 상당한 규모다. 일례로 청송사과만 해도 청송군에서 택배로 거래하는 물량이 하루에 20톤 이상이다. 그는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대해 소비자는 저렴하게 농산물을 구매하고 농민들은 판로가 넓어지지만 도매시장이 활성화되는 방법은 아니라 말한다.
중소형 마트, 재래시장 등의 소매채널이 활성화돼야 중도매인과 도매시장이 제 기량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또한 산지의 좋은 상품들이 도매시장에서 유통돼야 품질과 시세가 공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중소형마트의 판매 가격은 도매시장 거래 가격보다 대형마트 3사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며 대형마트의 세일 행사로 인해 시세가 변동하는 현 세태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장도매인 제도는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 업체들에게 유리하다 본다. 그에 따르면 과일 중도매인 업체 30% 이상은 연매출이 1억원이 안 된다. 시장도매인 제도가 활성화 돼도 인력을 산지, 마트 등으로 분산 가능한 업체도 드물다. 때문에 판로와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업체들은 경매제도가 유지되길 바라는 비율이 높다. 반면 판로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업체들은 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업체들은 산지에서 신선한 제품을 바로 공급받아 적정가에 판매할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본다. 안 대표는 “시장도매인은 물동량, 시세, 취급 상품의 가격 조정 능력, 빠른 물량 파악, 날씨 등 종합적인 능력을 갖춰야한다”고 말한다. 또한 시장도매인이 크게 성장하면 도매법인에 견줄 만큼 경쟁력도 갖출 것이라 내다봤다.
2018년 4월 15일자 더바이어 303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