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기자의 프랑스 푸드 투어_ 재래시장
시골에서 자란 필자에게 재래시장은 엄마 따라 갔다가 핫도그 하나 얻어먹는 정겨운 곳이다. 파리에도 그런 재래시장이 있다. 처음 방문한 파리의 바스티유시장. 토마토가 아주 신선하고 단단했고 체리도 달고 맛있었다. 과일과 야채 위에 ‘신선’ 두 글자가 떠오르던 바스티유시장을 그 이후 계속 이용하게 되었다.
매주 목요일, 일요일 아침이면 집 앞 운하 근처에는 천막이 펼쳐진다. 파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막셰 바스티유(Marche Bastille)가 바스티유광장부터 집 앞까지 길게 늘어선다. 직접 만든 모자, 직접 재배한 감자, 직접 잡은 토끼고기까지…. 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18 품목 116개의 노점상이 오순도순 자리를 잡는다. 버터, 계란, 치즈 등 유제품 노점 8개, 베이커리 4개, 와인도 5개점이나 된다.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품목은 과일과 채소다. 대략 38개점이다.
시장은 공식적으로는 7시에 열고 오후 2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새벽 6시경부터 시끌시끌하고 오후 12시가 지나면 문을 닫기 시작한다. 물건을 모두 판매한 곳도 있다. 물건이 남은 곳은 그때부터 ‘떨이상품’을 듬뿍 안겨준다. 그래서 항상 일요일 12시면 시장에 갔다. 1유로에 토마토를 한 박스나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가면 바나나도 1유로에 송이째 살 수 있고, 포도, 오렌지도 뭉텅이로 살 수 있다. 그렇게 장을 봐온 과일을 일주일 내내 먹었다.
시장에 처음 들른 계기는 주인아주머니 덕분이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시장을 같이 가자고 권했다. 파리 생활 초기에는 싱글이랑 집을 쉐어했고, 3개월 후엔 가족이 사는 집으로 들어왔으니 시장을 가자는 권유는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다. 근처에 시장이 서는 줄도 몰랐다. 처음 살던 집과 이사 간 집은 블록 하나 차이였는데도 말이다. 그 때까지는 까르푸를 이용했다. 옆 방 사람과 함께 장을 몇 번 보러 갔는데 그가 구매하는 건 주로 포장된 식품이었다. 사과도 벌크에서 먹을 만큼만 샀고, 고기도 정육점에서 사지 않고 포장 상품을 구매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주머니와 함께 장을 본 경험은 새로웠다. 집 근처에 까르푸가 두 곳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까르푸를 이용하지 않았다. 위로 두 블록, 아래로 두 블록 떨어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까르푸 외에도 집 근처에는 프랑프리, 오샹이 있어 장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았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신선식품은 언제나 재래시장을 이용했다. 품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많이 구매할 수 있다고 선호했다. 목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주방에 생선이 있거나 고기가 있었다. 과일도 테이블 위에 종류별로 다양하게 놓여있었다.
아주머니가 데려간 곳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쌓여있는 노점이었다. 아주머니는 과일과 채소를 사러 늘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생산자의 아들과도 눈인사를 할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다. 그 노점은 바스티유시장에서도 자리를 크게 차지했으며, 대부분의 과일 위에는 박스를 북북 찢어서 갈겨쓴 ‘토마토 kg 1.5유로’, ‘사과 kg 2.5유로’ 등의 가격표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걸려 있는 봉투를 익숙하게 뜯고 토마토를 담았다. 필자도 따라했다.
그런데 계산할 때 아주 서운한 일이 생겼다. 필자와 아주머니의 봉투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있었다. 가격은 아주머니 것이 5유로, 필자의 것은 3유로였다. 필자의 토마토가 아주머니 것의 반도 안 되는 데 말이다. 그 자리에서 생산자에 항의했더니 저울을 보여줬다. 많이 받은 것이 아니었다. 아주머니에게 토마토를 많이 준 것이었다. 10년을 이어온 아주머니와 그 생산자와의 관계에서 나온 결과였다. 이런 결과가 아주머니로 하여금 꾸준히 그 생산자에게 구매하게 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필자 역시 또 다른 단골이 되었다.
로컬푸드는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거리인 ‘건강’과 ‘안전’을 위한 식품이다. 여기에 ‘신뢰’를 더한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특히 자신이 먹는 식품의 성분이나 원산지 등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다. 80% 이상이 프랑스산 농산물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 프랑스 사람들은 재래시장에서 판매하는, 자신의 주거지 인근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신뢰한다.
바스티유시장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신선한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파리 시청에서 등록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파리 시청에서는 신선한 상품이나 유기농 상품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먼저 등록해준다. 이런 제도들이 재래시장 상품을 믿을 수 있게 한다.
로컬푸드의 시작은 재래시장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로컬푸드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재래시장의 활성화가 한 몫을 한다. 파리에서도 로컬푸드 매장이 하나둘씩 보인다. 슬로푸드를 표방하는 프리미엄 식료품점인 ‘까스(Causses)’는 친환경 유기농 로컬푸드 상품을 일부 취급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서서히 입지를 다지고 있는 까스는 올 가을 3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2016년 8월 1일자 더바이어 262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