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 맛집 카페리뷰어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오성은 작가의 에세이다. 얼마 전부터 카페에 갈 때면 왠지 어울릴 것만 같은 에세이를 들고 간다. 왠지 카페 분위기가 에세이와 어울릴 것 같아서고, 머리 복잡한 책은 몇 번 시도해 봤는데 괜한 헛힘만 뺐다. 그 이후로 머리 복잡한 책은 집이나 사무실에서 자세 잡고 따로 읽는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린 지금 속도 속에 살고 있다고, 지구의 속도와 계절의 속도, 게다가 온통 우리의 몸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욕망의 속도까지 더해져 하루가 쏜살같단다. 필자도 그렇다. 젊을 땐 잘 못 느끼던 시간의 흐름,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하고, 자꾸 나이가 들수록 그것들이 가까이 있단 생각을 한다.
어머니의 흰머리가 늘어가는 게 보이고, 주름이 깊어진다. 그러다 거울을 보면 필자의 모습 또한 그랬다. 작가처럼 통증도 쉬 낫지 않는 몸도 됐다. 가장 힘든 건 행복했지만 아쉬운 기억이 생각나는 때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로 인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눈시울은 붉어지며, 그냥 먹먹해진다.
오늘 다녀온 곳이 필자에겐 그렇다. 아쉬운 기억.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오늘 방문한 애견 동반 카페 그리너리는 이전 청주에서 꽤 유명했던 레스토랑이었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카페로 전업해 연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필자는 이곳에 반년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었다.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메뉴를 짜 구성원을 맞춰 시대적 기대에 맞춰 재오픈을 요청받았고, 그리했다. 하지만 중간에 말이 바뀌었고, 아까운 시간만 버렸다. 새로 멋진 카페가 생겼대서 가봤더니 그곳이었던 것이다. 6개월, 구석구석을 그리고, 짜 맞추고 하였으니 곳곳에 추억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쉬움이다.
알랭 드 보통은 진짜 귀한 건 보고 생각하는 것이지 속도는 아니라고 했다. 그건 맞다. 그리고 우린 그런 능력이 있다. 속도를 잠시 멈추고 진짜 귀중한 것을 보면서 우린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갈라 두고 멈춰 있던 기억 속 시간을 꺼내 되감는다. 그것이 아픔이든 행복이든 되돌리고 되돌릴수록 눈물이 찔끔 나는 이유, 너무 오래돼서다. 뻑뻑한 거다. 오랜 시간 윤활유가 말라 버렸으니.
한때 수목원이었던 곳은 뼈대가 그대로 살았다. 2미터가 훌쩍 넘는 나무 문이 멋스럽게 추억을 가둔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너무 갔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그래도 그렇게 찰나나마 그렇게 믿으면 문을 열어보고 싶다. 카메라 뷰 파인더 너머 다시 그 시절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철이 들어 기억하지만 행복했든 후회했든 우리네 삶은 그 순간들이 가장 찬란했다. 당시엔 늘 번잡하고 복잡해 미처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마저 없었지만 우린 그 매 순간 미치도록 아름다운 시간을 즐긴 것이다. 그 시간을 놓쳐 버린 사람도 있고, 만끽한 사람도 있을 테다. 지금 이 깨달음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린 조금 더 행복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호사도 잠시 카페를 돌아 나오며, 천천히 훑어 둘러본다. 다시 현실로, 내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다. 언제 또 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인연이 되어야겠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만큼이나 기억 속을 여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잠시 그 시간 속에서 잊었던 열정과 젊은 패기를 돌려보낸다.
그곳에는 지금보다 몇 배는 젊은 내가 투덜대면서도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던 꿈 많은 소년이 기획가가 되어 소망을 펼치던 때, 그 젊음이 돌고 돌아 여기에 서 있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를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 기억을 기억하는 기억 속의 나마저 잊히기 전에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