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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Jun 22. 2018

문맹보다 무서운 금융문맹

정말 필요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금융 공부




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인생도 성적순이 아니더라




인생을 살다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때 승자였던 자가 패자가 되고, 한때 패자였던 자가 승자가 되는 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인생의 승자와 패자가 한차례 가려진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은 보다 성공한 삶을 살아갈 것으로 기대하게 되고, 그렇지못한 학생은 보다 어려운 삶을 살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삶이 결코 대학 간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입에서 승리한 자들이 승승장구해서 대학교를 졸업하면 인생 전체에서 승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질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보다 좋지못한 대학을 나온 친구가 시간이 지나고보니 자신보다 더 좋은 차와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분명 자신은 그 친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성실하게 좋은 대학교의 학위도 가졌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보니 잘사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그 친구더라라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사례는 점점 늘어나서 심지어는 학교공부와 사회에서의 성공은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정말 학교공부와 사회에서의 성공은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는 것은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이 공부를 못 한다고해서 성공할 자질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공부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루하고 재미 없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 하기싫은 것을 참고 해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나름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내력, 끈기, 자기통제력, 집중력, 성공을 향한 집념, 욕망 등 이런 것들이 더 강했기에 공부를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즉 학업성적과 사회에서의 성공 간의 연관 관계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싶다.











좋은 대학 = 취업이 잘되는 대학,

나쁜 대학 = 취업이 안되는 대학




그렇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이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은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수많은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 원인 중 하나가 교육내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노동자를 양성하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대학교의 목표가 더 이상 진리탐구가 아니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매년 대학교에서는 자신들의 학교 졸업생이 얼마나 취업했는지를 공개하며 그 수치를 가지고 새로운 신입생들을 유혹한다. 우리학교에 들어오면 너도 취업할 수 있다고 말이다. 좋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나누는 기준은 더 이상 인류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여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더 좋은 기업에 더 많은 학생들을 보내느냐로 바뀌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대학 교육도 그렇게 바뀌었다. 대학교 졸업요건으로 논문이 아닌 자격증 취득과 토익점수를 요구하고, 인턴이라는 것으로 수업을 듣지않아도 학점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취업을 했다고 하면 수업을 안들어도 들은 것으로 해주는 일들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도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일수록 이러한 분위기를 빨리 눈치채고 남들보다 빨리 취업준비에 들어간다. 스펙을 쌓기 위해 1학년 때 토익점수를 올려놓고, 2학년 때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3학년 때 자격증 취득이나 대외활동을 하고,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보다 빨리 좋은 기업에 입사하는데 성공한다.



반면에 대학이라는 간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학생들은 본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취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좋지 않은 대학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 그들은 좋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과 똑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학교 간판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길을 찾게 된다.



자신이 직접 창업을 한다든지, 상대적으로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덜 선호하는 일을 하게된다. 바로 여기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다. 학교공부에 충실하며 좋은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 사회가 원하는 1등 노동자가 되어 국가경제 발전과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끼지 못한 학생들은 자의든 타의든 다른 일들을 하게 된다. 남들이 다 뜯어말리는 사업이나 장사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사업을 하는 사람이 모두 성공하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은 자신보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직장을 다닌다고 모두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꾸준한 월급이 나오는 만큼 갑작스런 부 역시 형성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오는 것을 미덕으로 배운 좋은 대학의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모을 때도 꾸준히 일정금액을 적금에 들어 부를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학교에서 투자를 배워본적도 없을뿐더러, 부모님께서 늘 위험보다는 안정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아끼고 아껴서 저축만 하게된다. 원금 손실의 위험이 거의 없는 저축은 반대로 수익 역시 많이 가져다 주지 못한다. 연 2% 정도의 이자 수익 정도만 가져다줄 뿐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구조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없는 덫에 걸린 것이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사의 오너를 포함한 주주만 돈을 벌고 자신은 자신의 성과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의 결론, r > g




『21세기 자본론』을 쓴 토마 피케티는 ‘ r > g ’라는 공식을 가지고 부의 양극화에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서 r은 자본수익률을 의미하고, g는 경제성장률을 의미하는데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가 경제성장률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다. 즉,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출처 : 21세기 자본론







하지만 토마 피케티가 제시한 공식을 이렇게만 말하고 끝을 내면 저 공식은 우리 삶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토마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 21세기 자본론 』이 출간된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는 변하지 않았고 토마 피케티의 연구결과는 오히려 자본이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절망적인 상황을 확인시켜준 셈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토마 피케티의 연구결과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라도 개인에게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토마 피케티가 제시한 공식을 다시 한번 봐보자. ‘ r > g ’ 라는 공식. 토마 피케티는 이 공식을 가지고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가 경제성장보다 빠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부자가 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였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대로 ‘ r > g ’이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최상책이지만 사회는 우리 뜻대로 쉽게 바뀌지 않고, 우리에게는 바꿀 힘도 없다. 선거를 통해 우리들의 대변인을 뽑긴하지만 그들은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토마 피케티의 메시지를 나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토마 피케티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g보다는 r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빠르다는 말은 돈으로 돈을 벌어야 부자가 될 수 있지, 노동을 통해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부자가 되자”, “돈을 모으자”라는 말이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정부분은 동의한다. 돈은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으며,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돈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도 “돈을 모으자”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문맹보다 무서운 금융문맹




  1987년 이래 4회에 걸쳐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


 









우리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긴다. 문명사회에서 글자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삶의 불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야학을 만들어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하기도 하고, 다양한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런데 금융을 모르는 건 어떤가? 우리는 금융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돈이라는 것은 그저 열심히 일하면 많이 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을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사실은 단순히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당장 오늘 먹을 물과 식사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돈이 없는 것은 삶의 존립기반을 흔들 수 있는 커다란 문제이다. 금융 문맹이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앨런 그리스펀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경제와 금융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위해서 말이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금융에 대한 공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금융에 대한 공부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위한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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