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큰 꿈은 회피하고 적당히 살아가는가. 자연이 무한한 자유와 힘과 풍요를 선사하는데, 정작 그것을 받아야 할 용맹하고 독립적이며 결의에 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왜 적당주의의 미로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 보상과 칭찬의 빵 부스러기에 만족하면서 사는가.
손이나 발, 혹은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신체의 기능 일부가 불편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영어로는 'disabled person'. 'able'이라는 단어가 '할수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dis'라는 접두사를 가진 disabled는 '할수 없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disabled persen'은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아마도 신체의 기능이 일부 불편함을 겪다보니 정상인보다는 여러가지 활동면에서 제약을 받는 것이 사실이고 그만큼 할수 없는 활동들이 많다보니 장애인들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을 뜻하는 다른 영어표현으로 'challenged person'이 있다. 도전받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앞에 visually와 같은 부사를 붙여서 그 사람의 장애를 표현한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 신체가 불편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상인 모든 것들이 하나의 도전이 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하나의 도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challenged person'이라는 표현은 'disabled person'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밝은 표현으로 보인다.
'challenged person' 매일매일 도전하고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 우리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과연 장애인으로 부를 수 있는가? 장애인들 중에는 정상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기 앞에 놓여진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전력으로 부딪힌다. 물론 정상인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실패도 많이 하지만 끝내 이겨낸다. 그들에게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자연스런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반면에 팔다리가 멀쩡하고, 앞을 보고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이른바 '정상인' 혹은 '비장애인'들은 자신 앞에 놓인 도전을 얼마나 기꺼이 응하는가?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들보다 더 많이 도전하고 있는가? 적당한 만족과 자신과의 타협으로 도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앞이 보이지 않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10미터를 움직이는 것은 고난이고 역경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도전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기꺼이 10미터를 가고야 만다. 한 'challenged peerson' 이 있었다. 이 'challenged person'은 13세때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16세때 등반가의 길을 선택했고 마침내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웨이언메이어. 그는 "인생의 걸림돌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 마음속에 들어있다. 무엇이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당신은 아직도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신체가 불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신체가 불편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무슨 일을 하기도 전에 안된다는 생각으로 머릿 속이 꽉찬 사람이 진정한 'disabled person'이다. 계속 되는 도전을 회피하며 적당한 보상과 칭찬의 빵 부스러기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저런 것은 할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지어 버리고, 해보지도 않고 도전조차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사람.
'challenged person'은 장애인이 아니다.
할수 없다는 생각에 도전조차 하지 않는 'unchallenged person'이야말로 진정한 장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