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학교에 입학하면,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서울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8시부터 시작되는 0교시는 물론,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성실하게 모범적인 고등학교 학생역할을 수행해냈다.
다시 말해,
나는 고등학교 3년을 대학입시에 모두 걸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는 단 한번도 이것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대학교에만 들어간다면,
인생의 남은 시간은 꿀 같이 달콤한 시간들로 채워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내신과 수능준비로 성실하게 보냈다.
비록 목표로 했던 SKY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다고 평가를 받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꿈 같은 인생이 펼쳐지리라는 생각에
합격증을 받은 그 날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꿈이 깨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대학교와
대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대학교는 많이 달랐다.
선배들은 학점과 토익 공부 때문에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
어렵게 만난 선배들도
새내기인 우리에게 생각지도 않은 충고를 하였다.
"1학년때부터 학점 관리하고 토익공부 해라"
꿈꿔왔던 달콤한 대학생활이,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유토피아와 같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취업이 어렵다는 건
지방에 이름도 모르는 대학교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학교 수업을 어느정도 열심히 따라가고 졸업하면
이름이 익숙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학점과 토익을 1학년때부터 신경쓰라는 선배들의 조언은
새내기인 나에게 겁을 주려고 한 장난으로 생각했다.
1학년 때는 MT도 가고, 선배들과 밤새 술도 마시는거 아니었나..
우리학교 취업지원팀에 가보았다.
우리학교의 취업률은 대략 70% 정도.
4년제 대학교 중에서 가장 높은 취업률에 속했다.
나머지 30%에는
고시 공부를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일부는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졸업생까지.
그래도 10명 중 7명 정도가 취업을 한다니
그리 나쁜 수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중간 이상만 하면 나도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중간이상만하면 대기업에 취업할수 있다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 70%에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취업한 졸업생들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였다.
취업이 안되서 졸업을 미룬 사람들은 모두 빠지고 말이다.
이쯤되니
선배가
1학년때부터
왜 그렇게 학점과 토익점수부터
챙기라고 했는지
조금씩 상황판단이 되기 시작했다.
과거 1970-80년대에는
졸업만 하면
대기업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했다던데...
이제 그런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30-50개의 취업지원서를 넣어서
나에게 단 1곳이라도
입사를 허락하는 기업이 있다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가야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 기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기업에서 내가 무슨 업무를 하게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그저 '와서 일하라' 고 허락만 해준다면,
월급만 따박따박 준다면.
냉큼 달려가야만 했다.
그 기업이 마음변하기 전에 말이다.
전문직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교 고시반의 정원은 70명.
시험에 최종 합격하는 인원의 숫자는 5명 안팎.
이 5명에는 학교 고시반에 속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의 숫자까지 포함된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낮은 합격률이었다.
전문직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선배들은
시험준비로 소중한 20대의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그 중 극히 일부만이 시험에 합격하여 꿈을 이루고 있었다.
합격하지 못한 대다수의 나머지 사람들은
결국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현실을 알아가면 갈수록
커져가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배신감' 이었다.
좋은 대학만 가면 이젠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했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살아온 시대에는
정말 졸업만 하면 큰 걱정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었을까?
아마 두 가지 모두였을 것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의도는
나에게 적중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 말만 믿고
추석 연휴에도 학교에 나와
열지도 않은 도서관문을 열어달라해서
수능공부를 했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했던 그 위치에 올라서니
보이는 것은
또 넘어야 하는 더 높은 산이었다.
오로지 저 산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게 끝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 정상은 작은 봉우리에 불과했고
올라선 봉우리 앞으로 더 큰 산 봉우리가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올라선 봉우리 앞으로
더 큰 산봉우리가 보였을 때의
허탈감과 허무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끊임없이 산만 오르다가
산에서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눈 앞의 산을 오르고나면 그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산이 또 있겠지?'
'산만 오르다가 이렇게 가는 인생인건가'
'나는 대체 왜 사는 거지?'
최소한 내가 무슨 산을 오르고 있으며,
산을 오르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아마 산봉우리에서 맞이하게 되었을 감정은 달랐을 것이다.
허무감이 아니라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하지만
산을 왜 올라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채
막연한 희망과 환상을 가지고
산봉우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내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이 그러했다.
'대학'이라는 봉우리에 올라서기위해
오직 오르는 것만을 생각했다.
저 봉우리만 오르면,
대단한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이해줄 것으로 믿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그 봉우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뛰어난 절경도, 시원한 바람도 없었다.
대신 더 높은 봉우리만이 보였다.
남은 것은 선택 뿐이었다.
한번 더 믿고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또 한번 부턱대고 오를 것인지,
아니면 이번엔 믿지 않을 것인지.
다시 내 앞에 주어진 저 아득한 산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되었다.
'저 산을 또 올라야 하는 것일까?'
'저 산을 오르면 정말 끝일까?'
'저 산 너머에 또 산이 있지 않을까?'
라는 수많은 의심과 의문에 휩싸였다.
지난 과거의 경험상
저 산봉우리가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더 높은 산 봉우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더 많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과 선배들은
이미 눈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학이
마지막 산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결국 다시 오를 수 밖에 없으니
한발짝이라도 남보다 먼저 오르겠다는 생각에서인지.
나처럼
또 한번 산에 오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렇게
산만 오르다가
내 인생이 끝나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