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가 많았던 대중가요 중에 ‘백세인생’이라는 곡이 있다.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
백 오십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 있다고 전해라
이 노래는 100세 이전에 자신을 찾아온 저승사자에게 자신이 아직 이승을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재미난 가사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100세가 되어서야 슬슬 저승에 갈 날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죽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70-80세 정도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시대에는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큰 사고를 당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이제 90정도까지는 살 것을 기대하고 있다. 100년을 살겠다는 인류의 간절한 소망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00세 인생을 코앞에 둔 현 시점에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자. 삶을 100세까지 산다는 건 정말 축복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과거에는 어르신들께 문안인사를 드리거나 명절을 맞이하여 찾아뵐 때면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씀을 드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보단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드리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이제 어느정도 오래 사는 시대가 오니 막연히 오래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해도 드라마 단골 소재는 ‘암’이었다. 암에 한번 걸리면 ‘이제 나는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수술을 통해 암이 정복되고 있다. 암을 걸려도 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암의 진행정도를 묻고 생존가능성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젠 암보다 ‘치매’가 더 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암은 병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람이 죽어간다. 그러나 치매는 생명과는 관련이 없다. 병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주위사람들이 점점 죽어간다. 막대한 치료비와 치매환자를 옆에서 보살펴야하는 상황은 주변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오죽하면 유력 대선후보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100세 인생, 장수하는 삶은 어쩌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빈곤율이 절반(48.1%)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들을 상대로 조사한 데이터를 보면, 예상은퇴연령은 66.9세, 노후를 위한 준비생활을 묻는 질문엔 잘되어있다는 가구가 10%가 채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가구들은 은퇴이후 삶에 대한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66.9세에 은퇴를 할수 없게 된다. 은퇴 이후에도 또다시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일자리는 이전보다 좋지 않은 일자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전 직장의 경력을 활용할 수 없는 단순노무직으로 내몰리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노후를 그 누구도 행복한 노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피하고 싶은 노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고, 우리의 수명은 살아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20년 뒤에는 우리가 지금 예상하고 있는 수명은 지금보다 더 늘어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장수가 반드시 좋고 행복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건강하게 늙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은 노후의 삶을 받쳐줄 경제적 여건도 중요하다. 이 2가지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노후를 살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기대보다 우리의 수명이 길어지게 되면서 맞이하게 되는 위험을 “장수 리스크”라고 한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축복이 아닌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게되면 삶의 행복, 불행복은 모두 다를 것이다. 다만, 신체가 점점 노화될 것이라는 점은 모두 같다. 아픈 곳이 하나둘 늘어나고, 힘은 점점 빠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젊었을 때 했던 노동은 하지 못하게 된다. 단순 노무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에 기대어 삶을 버텨나가야 한다. 이런 노후의 삶은 우리가 꿈꾸던 노후가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노후의 모습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나의 노동력은 더이상 내게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한다. 나의 노동력을 대체해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이다.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를 생각해보자. 기업은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노동을 시킨다. '공장'을 지어서 말이다. '공장'에는 상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기계장비들이 놓여있다. 노동자들은 그 기계들을 이용해서 상품을 생산해낸다. 이때 필요한 공장이나 기계설비 등을 '자본'이라고한다. 요즘 한창 이야기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이나 로봇들이 근로자들을 대체하는 미래는 모두 자본을 투입하여 물건을 생산해내겠다는 것이다. 기업가가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면 '노동 착취'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공장을 현대화, 자동화 시켜서 생산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면 '경영 혁신'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자본이 없을때는 노동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이 괜찮은 생각이다. 그러나 노동을 파는 것엔 한계가 존재한다. 노화도 그 한계 중 하나에 해당한다. 노동을 팔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그 대안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안 중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자본을 활용하여 자본을 버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이 일하게 하라"라는 이야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의 소유권이 주식으로 나눠져있다.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 기업의 대주주가 되고, 기업의 주인으로서 기업경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당연히 내가 보유한 기업이 번 이윤을 나눠가질 권리도 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다. 세상을 바꿀만한 상품이나 서비스,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기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주체이며, 혁신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물론 그 기업 안에는 사람이 있다.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기업을 만들고 자본을 유치해서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성장시키게 된다. 기업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기업의 주식을 1만원에 사서 2만원에 팔아 차익을 남기겠다는 투기적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발전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자본이 없으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개인의 입장에서, 젊었을 때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자본을 축적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축적된 자본을 가지고, 인류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기술을 가진 기업이나 인류의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한 나는 그 이윤을 나눠가질 수 있고, 이렇게 나눠받게되는 이윤의 크기를 나의 노후에 노동소득을 대체할만한 수입으로 만들어야 한다.
100세 시대가 이제 정말 코앞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하류노인, 중년파산과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장수가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재앙은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고된 재앙은 충분히 대비해서 막아낼 수 있다. 앞서 행복한 노후의 조건으로 2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건강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여건이다. 건강은 지금부터 잘 먹고 잘 운동하면 된다. 그럼 다른 한가지, 은퇴이후 끊어질 소득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주식투자를 권한다. 주식투자는 언젠간 사라질 나의 소득을 대비하기 위한 하나의 대비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