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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Sep 06. 2016

#6. 토익이라는 시스템의 승자

토익공부를 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모든 대학생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토익공부. 



토익이라는 시스템은 

왜 이렇게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관습적인 차원에서 

유지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토익을 대체할만한 

다른 시험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 OPIC과 같은 

다른 영어 시험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토익이라는 시험은 

단순히 관습적인 측면이나 

대체불가능성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토익이라는 시험을 

이토록 탄탄하게 

지탱해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크게 

2가지 요인이 

토익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게 만든다고 본다.



먼저, 

사실 토익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렸다. 


토익을 접수대행하는 

YBM이라는 회사는 

상장이 되어있고, 





토익 학원들은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한 토익을 가르쳐서 

억대연봉을 버는 사람이 

속속 등장하는가 하면, 





빨갱이나 파랭이로 불리는 

토익기본서는 

이미 다른 모든 책들을 

압도하는 

꾸준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소설책이나 시집은 읽지 않아도 

토익 책은 사서 보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렇게 산업화된 

토익 시장은 

이제는 

함부로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세력화되어 

마음대로 제도를 

바꾸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해관계자가 늘어나고 

경제적으로 얽히다보니 

이제는 

더 이상 손을 쓰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이런 토익시스템을 

기업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중 하나는 

신입사원들을 선발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영어능력이 

중요한 능력이 되었는데 


영어가 뛰어난 

학생을 뽑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 면접관을 

고용해서 

영어면접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기업입장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야한다는

문제점에 부딪힌다. 



삼성 같은 경우 

상반기 또는 하반기에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띄우면 


약 10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사지원서를 낸다. 





10만명을 상대로 

일일이 

영어면접을 본다고 하면, 


1인당 10분씩만 

영어면접을 본다하더라도 

100만분이 필요하다. 

시간으로 치면 1666시간이다. 


10분동안 영어실력을 얼마나 

측정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지만 


1666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과 

거기에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 된다. 





그러니 선별해서 

영어면접을 할 필요가 생긴다. 


그것이 바로 토익이다. 

토익으로 어느 일정점수 이상자만 

선발하여 영어면접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면접대상자를 줄일 수 있으므로 

신입사원을 선발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또한 토익은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응시하는 시험이다. 


학교나 학과, 

학점에 상관이 

모두 같이 치른다. 


그러다보니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기능은 

상실했을지라도 


토익은 기업입장에서 

‘성실성’을 

엿볼수 있는 평가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토익공부라는 것이 

영어와 큰 상관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이상한 공부를 참고 

견뎌내며 묵묵히 해서 

토익에서 고득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업입장에서는 인내심도 있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취업을 하는데 있어 

학벌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하고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토익은 

이러한 상황에 명분을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된다. 



명문대학교 학생과 

지방대학교 학생을 놓고 

누군가를 떨어뜨리기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냥 이유없이 떨어뜨린다면 

이것은 차별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토익’이라는 수단은 

좋은 설명이 될 수 있다. 


토익점수가 높아서 

이 사람을 뽑았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히 납득할만한 명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꼭 명문대학교 학생이

 토익점수가 높고 

지방대학교 학생이 

토익점수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토익의 이러한 기능은 

토익이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즉 토익은 

우리 사회 속에 

이제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이해관계인, 

채용 시스템, 

사회적인 명분이 

얽히고 얽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토익공부를 할 수 밖에 

없게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하게되면 

기다리는 것은 낙오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토익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묻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토익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오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낙오를 선택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레이스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입사하는 

대한민국의 교과서와 같은 

인생진로를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모든 노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토익공부를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다. 



달려온 레이스대로 

그냥 달리다가 

무사히 완주하는 것이 

편하고 안전한 선택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원하든 원치않든 

모두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을 

선택한다. 



어차피 몇 년을 해온 공부를

조금 더 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레이스에 참가하는 

참여자의 숫자가 많다면 

더더욱 그만둘 이유가 없어진다. 



설령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망할리는 없다는 

군중심리가 함께 작용하면서 

레이스는 더더욱 치열해지고, 

그만두는 것은 

엄청난 공포감을 가져오게 된다.



지금도 이런 상황 때문에 

수십만명의 학생들이 

종로와 강남의 어학원에서

토익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원을 가려는 사람도, 

기업에 취업을 하려는 사람도,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도 

모두 토익을 공부한다. 



토익이 영어실력을 키워주지도, 

영어실력을 보증하지도 못하게 되었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토익은 

더 이상 영어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토익은 

그냥 일종의 세금 같은 거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시험에 응시해야하는 관문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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