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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Sep 26. 2017

열정은 어떻게 착취되는가?

열정의 가격




  기업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일까?



  학점, 외국어 능력, 컴퓨터 활용능력, 수상실적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채용공고에 내세우는 인재상에는 ‘열정을 지닌 인재’가 꼭 있다. 열정. 우리 기업에서 주는 연봉이나 근무환경, 복지혜택과 같은 당근만을 바라보고 오는 사람이 아닌 자사의 비전과 사업에 대해 관심이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데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취업포털사이트인 사람인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은 1년 안에 퇴사를 한다고하니 기업입장에서도 능력만큼이나 고려해야할 요소가 바로 우리 회사에 대한 열정이다.













  그래서 입사 후의 부적응자를 줄이고, 기업의 업무를 파악해볼 수 있는 기회를 대학생들에게 제공해준다는 취지에서 인턴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업입장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미리 선점할 수 있고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문화나 업무를 미리 접함으로서 업무내용을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기업과 지원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기업입장에서는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정도 머물다가 떠나갈 인턴들을 관리할 부서와 시스템 구축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원자들에게 회사의 중요한 업무를 시킬 수는 없을뿐더러, 현재의 업무 구축 시스템은 현재 인력에 최적화 되어 있는데 인턴이라는 추가 인력이 공급됨으로써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이다. 지원자입장에서도 회사의 업무를 미리 파악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은 좋았으나 인턴이라는 경험이 정규직을 채용하는 또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되기 시작하면서 인턴제도는 더 이상 정보탐색의 기회가 아닌 채용의 한 과정이 되었다. 인턴이 정규직 전환과 연계되기 시작하자 인턴을 하기위한 지원자 수는 더 많아졌고 인턴이 금(金)턴이 된 것도 이 시기쯤이 되었다. 인턴을 하고자 하는 지원자 수가 증가할수록 인턴을 선발하는 기업에서는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시킬 수 있는 업무들이 늘어났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라는 배짱 속에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가지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로하는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인턴에 대한 지원자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몇백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게 되자 인턴과 유사한 제도들을 도입하기 시작한다. 취업시 가산점이나 서류전형 면제 특혜를 주면서 말이다. 물론 혜택들을 제공해주니 페이는 매우 적다.



  ‘홍보대사’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홍보라는 업무는 사실 굉장히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든다. 쉽게하려면, 매스 미디어를 통한 광고를 하면 되지만 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크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SNS홍보나 오프라인 활동이다. 젊은이들 치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안하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그 파급력이란 TV채널과 같은 전통적인 매스미디어 못지않다. 그런데 회사입장에서는 이런 소셜미디어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홍보를 맡은 사원들은 그런 SNS채널이 익숙하지않다보니 접근하기도 어렵고 어떻게 접근해야 효과적인지도 잘 감이 서지 않는 것이다. 큰틀에서의 전략을 세울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소위 SNS에서 대박칠만한 요소를 가미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부족함을 채워줄 젊은 피들을 수혈하게 된다. 그것도 아주 싼값에 말이다. 채용 보장도 아닌 채용 전형시 가산점을 준다는 미끼만 던져놓으면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채용 전형시 가산점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당근으로 기업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다. 설령 뜻대로 홍보가 잘 되지 않아도 투입된 비용 자체가 적으니 실패에 대한 리스크는 적고 성공에 대한 성과는 크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기업은행의 경우 28명을 모집하는 대학생 홍보대사에 601명이 지원해 21.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선발된 대학생 홍보대사들에게는 1인당 10만원씩이 지원되고 봉사활동과 대학 내 홍보, 웹툰 제작 등과 같은 온오프라인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리고 최우수자 2명에게는 서류전형 면제라는 혜택을 부여했다. 




  50군데 100군데를 써도 서류조차 붙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서류전형에서 면제를 받아 면접관에게 나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지더라도 굉장히 큰 혜택이 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합당한 보수를 받는지보다 내가 이 기회를 통해서 좋은 일자리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가 귀하고 중요해지다보니 법정최저시급은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나의 열정으로 하는 일이니까 돈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법정최저시급에 미치지도 못하는 돈을 받고 일을 하니 나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 아닌 기회가 된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인 알바몬이 인턴 경험자 6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인턴급여시 인턴들이 받은 월평균 급여는 122만원이었다. 인턴을 한 2명 중 1명은 야근과 특근을 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수를 정당하게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30%만이 그렇다는 답변을 했다.


 


  누군가는 이처럼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보수를 받으면서 하는 활동을 두고 ‘열정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너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임금을 안주거나 적게 주겠다는 것이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는 ‘너가 하고 싶어서 시켜주는 것인데 돈을 받기는커녕 이렇게 돈을 주니 얼마나 좋냐’라는 논리이다. 청춘들은 이런 논리에 화를 내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긍정의 힘’으로 이겨낸다. ‘나는 이 일을 하고 싶고, 이 일에 열정이 있다. 그러므로 보수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오히려 자신의 노동력에 비해 적게 받는 보수의 차이가 커질수록 이 일에 대한 나의 열정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찮고 단순한 업무부터 시작하는 부당하고 잘못된 시스템을 ‘도제식 시스템’으로 생각한다. 나 자신을 마치 내공이 있는 고수를 찾아가서 무작정 스승으로 모시고 물 긷는 일 3년, 나무베는일 3년을 하고서야 마침내 무공을 배워 절대고수가 되었다는 무협지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인턴의 실상은 이런 도제식 교육과 거리가 멀다. 그룹을 거느린 대기업의 경우 어느정도 역사가 쌓이면서 그래도 인턴들이 들어오면 무엇을 한다는 시스템이라도 갖춰져있지만 대다수의 기업들은 인턴들을 뽑아서 뭘 시켜야 할지 정해진 프로그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 사원이나 대리가 시키는 잡무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는 일이나 간단한 엑셀이나 워드작업을 하는 일 말이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인턴이라면 번역업무를 시킬 수도 있다. 어차피 인턴이 일하는 기간은 2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 정도다. 일을 할 수 있는 역량도 의문이지만 일을 맡기기에도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러니 같은 업무공간에서 마치 업무인 듯 업무아닌 업무같은, 별다른 교육없이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단순 업무만을 주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인턴경험은 좋은 경험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인턴 제도에 대해서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인턴채용에 다시 지원할 의향을 물은 설문조사에서 60.9%가 ‘지원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고, 인턴 근무시 느꼈던 불만으로 너무 적은 월급과 비체계적인 인턴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인턴제도는 인턴을 하는 지원자들에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인 것이다. 이는 곧 그다지 배우는게 많지 않았으며 딱 한번 정도로  자기소개서에 한줄 쓸수 있다는 정도로만 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열정은 ‘헝그리 정신’과 동일선 상에 놓인다. 그림에 열정을 지닌 화가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난할 것 같고, 노래에 열정을 지닌 가수는 길거리에서 낡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열정은 곧 너가 받는 대우가 너가 하는 노력에 비해 못 미처도 계속하는 의지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더 열심히 일해야지 내가 더 열정적인 인재가 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친 극소수의 사람만이 열정을 열정으로 인정받고 앞으로 나아간다. 대다수의 열정들은 헛된 노력으로 끝이나버린다. 헛된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도 그 노력을 인정하지 못한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노력에는 실패라는 딱지가 붙고 잊고싶은 과거가 된다. 열정은 그렇게 실패가 되어버린다.




  소수의 열정만이 열정으로 인정되는 시스템 속에서 대다수의 열정은 싼값에 이용당한다. 기업들은 젊은이들의 도전과 노력에 열정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헐값에 사들인다. 도전과 노력이 열정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그에 대한 보상은 내것이 아닌게 된다. 나의 열정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순간 나의 열정은 열정이 아닌게 되어버린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의 노동력을 스스로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열정이 중요한 사회에서 열정의 가치는 가장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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