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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Oct 03. 2017

믿는 회사에 발등 찍힌다

사람이 미래라고?



사람이 미래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로 13편의 광고를 만든 기업이 있었다.

  경제불황의 여파로 경영효율성을 확보하기위해 모든 기업이 몰두하던 분위기 속에서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은 참신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요소로만 바라보던 시류 속에, 비용절감을 위해 사직을 권고하는 기업들의 행태가 만연했기에 이 기업의 광고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이 인간적인 따뜻함을 지닌 기업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기업에게도 성(成)하던 시기가 있으면 쇠(衰)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이 미래다’라고 했던 그 기업에게도 겨울은 찾아왔다.




  경영상의 실책이든, 업황 사이클의 불황이든 그 기업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그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해내야 생존할 수 있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모든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었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했다.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3편의 광고를 통해서 그토록 ‘사람이 미래다’라고 외치던 기업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 그토록 자신들이 외치던 ‘미래’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보통의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기업에 오래 근무한 40대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 등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 기업은 달랐다. 기업에 갓 입사한 23세의 여직원에게까지도 명예퇴직을 종용하였다. 갓 입사한 여직원이 회사가 어려워지는데 얼마만큼의 관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기업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20대 명예퇴직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라던 그들의 13번째 이야기가 무색해질 만큼, 그 기업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했다. 그렇게나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는 결국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오기위한 달콤한 속삭임에 불과했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기업들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권고사직을 할만큼 그 어떤 기업보다도 비인간적으로 더 차가웠다.




  대한민국은 1997년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하였다. ‘가족 같은 회사’,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고대 공룡들처럼 멸종되었고 2000년대를 강타한 ‘사오정(사십 오세 정년)’, ‘오륙도(50~60대에도 계속 회사에 남아있으면 도둑)’이라는 말도 이젠 꿈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대신에 ‘문송합니다(문과라서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생 구십퍼센트가 논다)’,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심지어는 입사와 동시에 퇴직 이후를 걱정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뭐 어찌되었든 경제성장이 생각만큼 되지 않으면서 구조조정이 더욱더 무차별적이고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한 이유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사람은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노동만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요소인데 토지든 자본이든 혹은 둘 다이든 노동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야 가치가 창출된다. 그래서 이러한 노동의 댓가로 기업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이 임금을 가지고 가정이 꾸려지고 유지된다. 그리고 그 가정은 국가, 기업, 가계라는 경제주체의 3요소 중 하나로서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경제 주체의 3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으면 경제 체제는 무너지고 만다.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언어를 ‘회계’라고 가르친다. 회계를 통해서 우리는 기업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산이 얼마이고 부채가 얼마인지, 또 자본은 얼마이며 이익과 비용은 얼마나 발생했는지 기업은 회계라는 언어를 통해서 이야기를 한다. 회계는 다른 언어와는 달리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숫자로 나타낸다는 점이다. 자산이든, 부채든, 자본이든, 이익이든, 손익이든 기업에 대한 모든 것을 숫자로 이야기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회계에서는 사람은 급여 혹은 노무비라고 하는 숫자로 표현될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고, 그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연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없으며, 그 누구도 쉽게 그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숫자는 다르다. 숫자에는 사연이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많고 적음만이 있을 뿐이다. 숫자가 많은 것이 좋을 때가 있고 적은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많은 것이 좋은 숫자는 더 늘리고, 적은 것이 좋은 숫자는 더 줄인다. 오로지 결과만이 나타날 뿐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표했던 숫자만큼 늘리거나 줄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숫자에는 아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3세의 여직원에게 명예퇴직을 권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직 젊으니까’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테니까’ 등. 나이가 들어서 다른 곳에 갈 곳도 없고, 책임져야할 가족들도 있는 중년의 사원들은 20대 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사실 청년들이 명예퇴직을 해야하는 이유는 젊어서도, 챙겨야할 가족들이 없어서도, 다른 곳으로 갈 기회가 많아서도 아니다. 23세의 여직원에게도 부양해야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고, 모셔야하는 식구들이 있을 수 있다. 이곳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젊다는 이유로 잡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세의 여직원에게 명예퇴직을 권고받은 이유는 단 하나다. 단지 힘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오너 가는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았다. 경영이 어려워지자 약간의 위로금과 재취업교육을 제공하여 자신들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할 수 있게끔 했을 뿐이다. 경영악화의 주된 책임자는 그 어떤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반성도 공표하지 않았다. 단지 업황이 어려우니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결정만 내렸다.




  명예퇴직을 권고받은 23세의 여직원을 포함해, 신입사원들은 그 기업에 입사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뻤을 것이다. 대기업 그룹계열사에 들어가 거기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멋진 커리어를 성장시켜나가는 청사진을 그려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들어간지 몇 년이 되지도 않아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23’세라는 숫자로만 사람을 보았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입사지원을 했을 때, 기업은 그들에게 ‘입사 후 포부’에 대해서 물었다. 그 질문을 받은 지원자들은 기업이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나의 미래를 물어보는 기업에 나의 미래를 맡길만 하다는 확신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 지원자에게 포부를 물었던 이유는 그 사람이 꿈꾸는 미래나 계획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 청년이 우리회사에 얼마나 오래 다닐지가 궁금했던 것 같다. 입사하고 나서 금방 그만둬버리면 그동안 준 월급은 물론 가르치느라 들어간 교육비용으로 인해 손실을 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오래다닐지 여부를 꼭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기업은 거짓말하거나 변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기업들은 늘 비용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아왔다. 높은 임금을 주어야하는 정규직 사원 대신에 같은 일을 더 저렴하게 시킬 수 있는 비정규직 직원을 더 선호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직원들이 받는 임금이 다르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 어느 기업에서 무슨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느냐가 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동일 시간, 동일노동을 하더라도 말이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기업이자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의 경우 파견이나 사내하도급 등을 통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많이 쓰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 파견근로가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기 때문에 도요타의 비정규직 인력은 대부분 인력 파견회사에 소속된 근로자들이다. 도요타는 세계의 경기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 근로자를 쓰기보다는 비정규직 인력을 늘리는 경영정책을 쓰고 있다. 실제로 2011년 3월 도요타의 정규직 직원수는 6만 9125명이었지만 2014년 3월에는 6만 8240명으로 줄었다. 이에 반해 파견직 근로자는 같은 기간 8753명에서 9571명으로 늘렸다.




  저성장 경제기조와 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업에서도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잘되야 노동자들도 높은 연봉과 안정적 지위를 보전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기업이 잘되기위해서 노동자들의 지위와 처우가 나빠지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되는 세상이 왔다. 이쯤되면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이 존재하는 것인지,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인지 조금씩 헷깔리기 시작한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기업의 광고가 그토록 사회적 호응이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이 미래다’라는 생각이 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88만원 세대 10년 후, 착취세대 >


88만원 세대 10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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