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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Oct 31. 2017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고갱님^^(ㅠㅠ)

감정의 착취

감정의 착취




  과거 공급 주도의 경제시대가 수요 주도의 경제시대로 바뀌면서 기업들이 생산한 물건이 잘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자신의 물건을 팔기위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게 된다. 가격을 저렴하게 하는 방법, 브랜드파워를 키우는 방법, 제품을 더 낫게 차별화시키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물건만 생산하면 팔리던 시대에서 물건을 생산해도 팔리지 않는 시대로 오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CS(Customer Service), 즉 고객서비스 부분이다.




  CS의 역사를 보면 기업들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기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1단계 CS는 고객서비스(Customer Service)이다.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이다. 천편 일률적인 서비스 제공에서 벗어나 고객의 상황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1980년대 스칸디나비아 항공사가 CS경영을 최초로 시작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LG가 고객가치 창조라는 CS경영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운영해왔는데 이때부터 고객을 중심에 두는 경영을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는 곧 그동안의 공급 중심의 경제가 수요 중심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기업보다는 소비자가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단계 CS는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다. 고객에게 기본서비스 외에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이 만족하게끔 하는 것이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추구가 아닌 고객만족이 되며 경영의 모든 부문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을 만족시켜야지만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신경영기법이다. 고객 만족을 높이기위해서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킬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고 고객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며, 사원들의 복지 향상과 일체감 조성 등을 중요시 하게 된다. 또한 제품의 기획, 설계, 디자인, 제작, 사후서비스 등 모든 과정에 걸쳐 제품에 내재된 기업문화 이미지와 함께 기업이념등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며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충족시켜 고객의 재구매율과 선호도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경영기법이다.







  3단계 CS는 고객감동(Customer Surprise)이다. 고객이 만족하는 수준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고객이 서비스를 받고 감동하게끔 하는 것이다.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 경영이 나오기까지는 점점 더 치열한 시장상황이 반영된 결과이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가격이나 품질에 대해서 만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측면, 즉 상표 이미지와 제품서비스를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품의 품질 및 가격으로 소비자를 평생고객으로 삼기에는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차별화를 나타내기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객감동경영은 소비자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 즉 소비자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진짜 욕구, 수요를 찾아 그것을 만족시킬수 있는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고객감동을 넘어서 고객황홀(고객이 서비스를 받고 만족을 넘어 황홀하는 수준), 고객졸도(고객이 서비스를 받고 깜짝 놀라서 졸도하는 수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가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인 “손님이 짜다면 짜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슬로건 역시 그 가게의 고객서비스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심지어는 무인으로 운영하기위해 만들어진 무인주차발급기 앞에서 백화점 안내원이 주차표를 직접 뽑아주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하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백화점 안내원이 직접 뽑아 줄꺼면 사실 무인주차발급기가 필요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암튼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고자 하는 기업들의 노력은 무인발급기 앞에서 직원이 직접 표를 다시 뽑아주는 수준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고 했던가. 이런 기업들의 서비스에 익숙해지자 점차 소비자들은 이러한 서비스들을 자신들이 누려야할 권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의 직원이 90도로 인사를 하지 않으면 무언가 기분이 불쾌해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실수로 옷에 문제가 생겨도 무조건 교환이나 반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를 감독기관이나 인터넷에 알리겠다는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는 블랙컨슈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물건을 팔기위해 고객의 기분을 맞출수 밖에 없었고 부당한 요구에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안 좋은 소문이 퍼지거나 평판이 나빠지면 더 큰 손실을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의 요구가 정당해서가 아니라 부당하더라도 더 큰 이익을 위해 작은 손해를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백화점 고객이 주차장 아르바이트생들을 무릎꿇린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시작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사진은 뜨겁게 논란이 되더니 급기야는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 주제로 다뤄질만큼 대한민국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사건의 당사자인 백화점 모녀와 인터뷰를 하여 당사자들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의 모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 내가 왜 돈을 쓰면서 이런 경우를 당해야 하는데! ”

“ 왜 물건 사가는 사람이 주차요원한테 이렇게 모욕을 당해야 하는데! ”



  우리는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산다. 똑같거나 거의 유사한 물건이 할인마트나 근처 슈퍼에 있지만 돈을 더 주고서라도 백화점에서 가서 물건을 산다.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물건과 동시에 그들의 서비스를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더라도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 현대백화점은 “가장 많이 파는 백화점보다 서비스를 가장 잘하는 백화점이 경영의 모토”라고 밝힌바 있다.








  그래서 백화점 고객들은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대우 받으며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가면서 쇼핑을 하는 것에 만족과 가치를 느끼고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다보니 백화점 모녀 갑질사건과 같은 일이 종종 발생한다. 품격있고 격조있게 대우받으면서 물건을 사는 것이 중요한데 거기에 거슬리는 일을 하게되면 그들은 그들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런 보상의 심리로 어린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무릎꿇리는 일까지 서슴없이 시키는 것이다. 특히 ‘ 왜 물건 사가는 사람이 주차요원한테 이렇게 모욕을 당해야 하는데! ’와 같은 백화점 모녀사건의 당사자 발언은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잘 나타내준다. 그들은 백화점에서 단순히 물건 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서비스까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사람들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과정에서 감정이 적극적으로 개입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감정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상품을 파는 직종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직종일수록 이러한 감정노동은 더욱 심해진다. 특히 항공사 승무원이나 기업의 콜센터, 판매원 등의 감정은 CS의 경영의 시작이자 완성이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의 매출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행동지침과 같은 형태로 업무지침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콜센터 직원의 멘트나 언제나 미소를 지어야하는 항공사 승무원의 표정은 감정이 하나의 노동으로 상품이나 서비스에 덧붙여 판매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멘트나 표정이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로 이어져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행위 외에도 우리의 모든 행위 대부분에는 감정이 깃들어있다. 꼭 업무나 근무를 할때만이 아니라도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싫은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화가나도 화를 내지않으려고 노력한다. 즉 감정을 관리해나가는 것이다. 이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노력 중 하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감정관리가 노동으로 판매가 될 때 어떻게 되는 것인가이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는 자발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감정이 조율되고 조정된다.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도 화를 낼 수 있으며,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의 지침에 따라 내 감정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하에서 이뤄지는 계약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계약조항 등이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관리하게끔 하는 약자로 만들어 낸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산콜센터의 사례를 보면, 아무 이유 없이 폭언과 욕설을 듣는가 하면, ‘너희들이 월급받는 이유가 뭐냐’, ‘키스할래?’, ‘아가씨 몇 살? 나랑 잘래?’, ‘가슴 몇 컵’과 같은 성희롱을 포함한 모욕성 발언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다산콜센터의 목표인 시민고객감동서비스를 달성하고자 별다른 대응없이 묵묵히 콜센터 직원들이 이러한 불합리를 감내해야했다. 화를 내거나 전화를 끊으면 시민고객을 감동시키지 못하니 묵묵히 참아내는 것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악성민원인들에 대한 대응메뉴얼들이 만들어지고 엄격하게 이들을 다루고는 있지만 여전히 지금도 콜센터 직원들의 감정노동은 –ing중이다.








  나는 이러한 감정노동을 하나의 착취로 정의한다. 감정노동을 행하고 있는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 감정노동자의 사례로 반드시 언급되는 콜센터 직원들만 보더라도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이며, 고학력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콜센터의 응대업무가 높은 학력을 요구하지 않으며 비교적 단순한 업무로 취급되다보니 타 직종에 비해서 그리 보상도 크지 않다. 물론 여기 보상에는 근로자들의 감정노동에 대한 부분은 없다. 감정노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근로자들의 스트레스나 정신병적 질환들은 근로자 자신들의 자기관리부족으로 여겨질 뿐이다. 콜센터 업무를 그저 고객들의 민원을 접수받고 처리하는 정도의 단순 업무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기보다는 개인의 멘탈문제로 취급되는 것이다. 또한 넘쳐나는 실업자와 일자리를 얻으려고 줄 서있는 경제상황에서 얼마든지 콜센터의 대체업무를 처리할 사람들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서도 근로자들의 그런 문제들까지 세심하게 신경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튼 기업입장에서는 CS경영의 시작이자 끝인 고객과의 접촉업무를 아주 저렴한 비용을 들여서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그리고 효율성의 이면에는 낮은 임금에 고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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