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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자본가 Dec 21. 2017

위대한 기업에 다니면 위대한 사람이 되는가

기업은 '나'가 아니다

‘기업 = 나’가 아니다



  ‘또 하나의 가족’ 지금은 국내 최고의 기업을 넘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이 내세운 슬로건이다. ‘가족’. 가족만큼 친밀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집단도 없다. 가족의 구성원은 운명공동체로 묶여있었고 그야 말로 한솥밥을 나눠먹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관계이다. 



  지금은 기업에서 『 신입직원을 모집한다 』고 채용공고를 내지만, 과거에는 『 함께 일할 가족을 구한다 』 고 채용공고를 내곤 했었다. 그 기업에서 함께 일을 해서 함께 번 돈으로 그 회사의 직원들이 생계를 꾸려나갈 임금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구성원들-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한솥밥을 먹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래서 과거에 직장을 다니던 기성세대들은 직장을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닌 평생 내가 몸 받쳐 일할 곳으로 여겼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이 시기에 존재했던 단어다.








  하지만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기업의 재무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급기야는 대우그룹 같이 대마불사로 여겨지던 커다란 기업들도 쓰러지기 시작했다. 기업의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라는 방법 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이란, 기업의 기존 사업구조나 조직구조를 보다 효과적으로 그 기능 또는 효율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구조 개혁작업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서 직원들을 자르는 것이다.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으로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해왔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에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회사를 나와서 무엇을 해야할지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어찌되었든 1997년 이전까지 너무나도 당연했던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는 1997년 이후 멸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 마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처럼 말이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만큼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직장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더 좋은 급여와 더 나은 대우를 해주면 그것을 좇아 이직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기업이 어려워서 구조조정을 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기업이 자신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보편적인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기업과 개인은 하나의 가족에서 개별적인 개체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기업은 경영상황에 따라 개인에게 임금과 성과급,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고, 개인은 자신의 미래를 약속해줄 수 없는 기업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이유가 없었다.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자신의 운명을 각자 챙길 뿐이었다. 기업은 확보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키워나갔고 개인은 더 많은 급여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이 생기면 언제든지 찾아떠났다.



  그런데 기업과 개인의 관계가 이렇게 변모하였는데도, 여전히 기업을 자기자신으로 생각하는 개인의 행태가 곳곳에 보이는 듯 하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 되면 입사지원서를 쓰게 된다. 각 기업이 내건 채용공고를 보고 그들이 제시한 자기소개서 양식에 자신을 채워넣는다. 자동차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쓸 때엔,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동차에 대한 추억을 시작으로 자동차 시장의 미래까지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이 자동차 회사에 적합한 인재라는 것을 알린다. 백화점을 운영하는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쓸 때엔, 어렸을 적 엄마 손을 붙잡고 처음 간 백화점에 대한 추억부터 정체되어가는 백화점 매출을 회복시킬 방안까지 고민해서 자신이 백화점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이야기한다. 워낙 취업이 어려워서 내가 가고자하는 기업보다는 붙여주는 곳에 가는 것이 일반화된 지금의 채용시장에선 이런 모습은 너무나도 당연한 합리적인 행동이다. 어딜 붙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일단 최소 2개이상의 기업에서 합격통지서가 날아와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미리부터 내가 정말 관심있는 기업만 입사지원서를 쓴다든지, 입사지원서를 쓴 기업 중 어디를 선택해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어렵게 취업이 되고나면 기업에 들어가서 신입사원 교육을 받는다. 신입사원 교육에서는 여러 가지를 배우지만 기업마다 빠지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그 기업의 역사와 정신, 사훈, 설립 이념 등이다. 기업의 경영철학과 역사, 이념을 가르침으로써 신입사원들에게 기업의 정신을 계승시키고 진정한 ‘ㅇㅇ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단결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활동이 곁들여진다. 도미노를 쌓는다든지, 해병대 캠프를 간다든지 말이다. 그렇게 나는 ‘ㅇㅇ인’으로서 기업의 이익을 위해 근무를 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런 신입사원 교육과 취업을 했다는 외부의 시선이 결합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기업의 정체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꿈이라는 것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보고 싶다와 같이 조금 허무맹랑한 요소가 엿보이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꿈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목표지향적이다. 꿈이라는 것이 우주만큼 높은 이상적인 것에서 현실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목표를 이룬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 즉,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에게 취업을 한 사람은 꿈을 이룬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기업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은 선망의 대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사실 선망할 정도로 대단한 것은 그 기업의 신입사원이 아니라 그 기업 자체인데,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잘못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입사원 본인도 신입사원 때 받은 소속감 강화 교육과 자신을 향하고 있는 듯한 타인의 시선들로 인하여 착각에 빠지게된다. 모두가 선망하고 있는 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나’ 역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런 환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진다. 관료적인 조직체계 속에서 세분화 된 업무들을 수행하다보면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관여하고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생긴다. 그저 주어진 업무만을 기계처럼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처럼, 그 안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만을 충실하게 처리할 뿐이다. 딱 내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만큼만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을 우러러보는 듯한 외부의 시선은 고된 업무를 버텨내는 원동력이 된다.



  기업에서 60세까지 일한다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 되었다. 생산직 근로자나 임원까지 다는 것이 아니라면 보통 대부분 40대쯤이면 퇴직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미래까지 책임져줄 기업은 이제 대한민국에 없다. 만약 이와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면, 기업을 나와 동일시하는 사고는 빨리 버릴수록 좋다. 기업만 믿고 있다가 아무 준비도 못하고 은퇴를 맞이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으며, 하루라도 빨리 나를 기업과 분리해서 생각할수록 내가 하루라도 빨리 홀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나와 이해관계를 반대로 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크게 2가지에서 나온다. 첫째는 애플처럼 아이폰이라는 세상에 없던 상품을 만드는데서 나온다. 이를 기획력 혹은 개발력이라고 하는데 기업의 R&D 부분에 속하는 영역이다. 둘째는 화웨이, 샤오미처럼 상대 기업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서 나온다. 이는 제품의 생산성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인데 보통은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업입장에서는 우수한 개발력과 기획력을 지닌 인재를 스카우트 하기위해 많은 임금을 제시하여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 선택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사실 첫 번째 요인이나 두 번째 요인이나 기업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면 줄인 비용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높은 임금제시도 비용이기 때문에 줄일 수 있다면 줄이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임금 외에 맛좋은 식사서비스나 자유로운 근무환경과 같은 복지여건을 개선시켜 인재를 섭외하거나 떠나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그런데 반대로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게 최대한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이 무조건 좋다.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기업에서는 연봉으로 2억원을 제시하고 다른 기업에서는 3억원을 제시했다면 3억원을 주기로 한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입장에서는 백번 옳은 선택이다. 그런데 좀더 알아보니 연봉 2억원을 제시한 기업은 호텔 식사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반해 연봉 3억원을 제시한 기업은 다른 서비스가 없다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개인의 가치관이나 성향에 따라 선택을 갈릴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인사전략적인 부분에 속하는 영역이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기업의 이해관계와 개인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위해서는 최대한 비용을 줄이는 것이 좋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연봉을 받아내는 것이 좋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상황에서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 한다는 사고는 개인을 위태롭게 하는 착각이 될 수 있다. 물론 기업입장에서는 개인이 자신을 동일시해주면 좋은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신입사원 교육에서 그토록 ‘ㅇㅇ인’으로 거듭나게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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