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한번 믿어봐.

격려와 성희롱 그 어디쯤.

by mari

S사의 악연은 K대리에서 끝나지 않았다.




눈물 젖은 빵으로 나를 괴롭히던 K 대리.

그 위에는 H과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정호영 쉐프를 닮았던 그 과장

S사의 프로젝트는 3월에서 10월 정도로 꽤 길었는데 H과장은 회의때, 회식때

늘 아래로 줄줄이 자기 팀의 대리들을 달고 회사로 왔었다.


2000년의 회식은 어떠한가.

술을 1차 2차 3차로 때려 마시고, 노래방에 가고, 또 다시 술을 마시고...

게다가 그것이 회사 내부 회식이 아니라 고객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입사한지 얼마 안된 신입사원이라면...

지금은 생각도 할 수 없이 끔찍한 회식이다.


그날도 여지없이 1차 갈비집에서 소맥을 막 말아서 돌리고 돌리고,

완전 꽐라가 되고 옷에는 갈비냄새를 덕지덕지 묻힌 채, 2차는 포장마차처럼 생긴 술집으로

우르르르르 몰려갔다.

테이블 위에는 - 나는 먹지도 못하는 산낙지가 꿈틀대고 있었다 - 안주와 소주병들.

목구멍 끝까지 소주가 차있었는데도,

앞에 앉아있는 고객님들은 계속해서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산낙지도, 회도 잘 못먹던 시절이어서

안주로 먹을만한 것도 없었고, 계속해서 소주만 받아 마시고 있었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자리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H과장이 앞에 앉아있었다.


-H: 힘들지? 우리 K대리가 많이 괴롭히지? 뫄뫄님이 이해해죠. K대리도 잘하고 싶어서 그래.

-나: 네...

-H: 자 한잔 받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 네...


계속해서 H과장은 K대리가 왜 그렇게 악랄하게 개발업체를 대하는지에 대해 자기가 무슨 아빠라도 되는 양 변명거리를 늘어놓았고, 자기도 사실 회사 내부에서 K대리랑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피력했다.

나도 술이 이미 만땅이겠다 그동안에 겪었던 일들을 조금(아주 조금) 내뱉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놈의 H과장이 헛소리를 시작했다.


-H: 자자 다 잊고 우리 앞으로를 위해 또 잘 해보자고. 아 그냥 오빠라고 불러!

-나: 네? 과장님을 왜 오빠라고...

-H: 아... 뫄뫄씨는 회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오빠라고 부르면 앞으로 좀 많이 편해질거야.

자, 오빠라고 해봐~

-나: (개소리 하고 앉았네...) 아... 제가 오빠가 없고, 오빠를 사겨본 적도 없어서 오빠 소리를 못해요.

그리고 과장님이 왜 오빠에요.(나이도 엄청 나보다 많은 주제에)

-H: 아하하하핫. 아직 술이 덜 들어가서 그래. 오빠 믿지? 오빠라고 부르고 싶을 때 불러봐. 하하하.

-나: (무슨 오빠를 믿어. 오빠 없다니까.) 네 과장님 잘 부탁드려요.


짜증나고 답답한 시닙이는 연거푸 술만 마시고 죽상을 하고 있으니,

H는 또 돌고 돌아 다른 시닙이 앞으로 가버렸다.


내가 사실 K대리 때문에 힘든것도 맞고, 그녀가 회사 내부적으로도 대하기 힘든 사람이어서

나의 고충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은 나에게 격려랍시고 그런 말을 한 것 같았지만.

그냥 기분 더러운 성희롱에 불과했다.



2차로도 술이 덜 찼는지, 어르신(?)들은 3차를 가자고 했고,

그 이상한 나라의 아저씨들과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모두 강남의 I호텔 나이트로 향했다.


진짜 성희롱은 여기가 정말 최고조였는데,

S사의 담당자들은 여기저기서 우리 회사의 어린 직원들을 끼고 춤을 추고 싶어했고,

H과장이 어느 순간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나는 그때 회사에서 성공할 생각도 없었고, 너무나 패기 충만한 시닙이였기 때문에

그 사람의 무례함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스테이지로 내 손모가지를 이끌며 오빠랑 춤추자, 오빠한테 잘 보이면 프로젝트는 쉬워진다. 오빠랑 오늘 화끈하게 놀다가라. 라고 월월 짖는 H과장의 팔을 훽!!!! 뿌리쳐 버렸고,

과장님이 왜 오빠예요. 과장님이지! 저는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하고 혼자 그 곳을 빠져나와 버렸다.


현란한 불빛과 즐거운 사람들, 많은 자동차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강남의 밤거리를 혼자 걸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서 나는 또 울었다. 이렇게 더러운 것이 사회생활이던가.

손모가지를 내주고 오빠라고 불러야 프로젝트가 쉬워진다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2000년에 일어난 것이어서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정말 난감한 마음으로 다음날 출근을 했다.

대표님은 나를 부르셨고, (뭔가 내가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았는지...)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호의로 받아들이라고, 그 사람도 기분이 엄청 나빴을텐데 뭐라고 하면 자기가 막아주겠다고.

교감 선생님 훈화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어야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회사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회의가 열렸다.

또 그 S사의 프로젝트 팀이 줄줄이 온다고 했다. 이번에는 부장까지 온다고 했다. 또 회식이 있다고 했다.

땀이 줄줄 났다. 그 사람을 또 봐야 한다는 것인가. 그 사람에게 무례했던 일을 사과해야 하나?

그사람이 나에게 오만오조배쯤 무례했는데!

회의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쯔음...

회사의 중앙 문이 열리고 그 팀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머선 일인지!!!

1빠로 들어오는 그 무리의 부장님... 이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나를 보고 웃어준 부장님께 인사했다.

-나: 안녕하세요! 선배님!

-부장님: 어 그래. 잘 지냈어? 우리 팀떄문에 잘 못지냈지? 이따 다시 봐!

라고 점잖게 인사하고 회의실로 들어간 그 분은

나의 학교 선배님이셨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 선배님과 나의 반가운 인사를 지켜보며 얼굴이 붉어진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H과장!!!


동문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나는 뭐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차이나는 선배님들과도

자주 만나며 친분을 쌓아 두었으니, H과장 입장에서는 엄청 퐝당했겠지.


내 주변으로 우리팀 뿐 아니라 옆팀의 기획자들도 우루루 몰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대략 설명했고, 다들 모두 꼬소해했다.


회의를 잘 마치고, 또 회식을 가는 길...

점잖으신 나의 선배님은 보이듯 안보이듯 잘 챙겨주셨고...

H과장은 맨정신에 근처로 와서 엄청 사과를 해댔다.

자기가 지난번에 술이 취해서 너무 실수한것 같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잘해주고 싶어서 그런거였는데 기분 나빴다면, 입 다물고 있겠다고.




이 일은 뭐... 이런식으로 대략 정리되었던것 같다.

내가 회사에 누를 끼쳐 회사를 관두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우리 회사의 대표님이 부장님께 어느 정도 항의 비슷한 걸 하게 되었는데

그 과장도 부장님께 불려가서 혼나긴 했지만, 별일 없이 그 회사를 계속 다녔고,

대신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빠지는 것으로 불명예 퇴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로서는 씁쓸할 뿐이었다.

만약 그 부서의 총괄 부장이 나를 아끼는 나의 선배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부드럽고 깔끔하게 일이 처리 될 수 있었을까?

한없이 나약한 갑을 관계에서?




나는 회사를 좀 더 오래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이 정도의 성희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협력사 여직원에게

오빠라고 부르고 강요하고, 오빠라고 하면 프로젝트가 쉬워질것이고,

나이트에서는 함께 춤을 추자며 손모가지를 잡아끄는 행위가

내가 박차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 이후 더욱 심해졌을 성희롱의 수위가.

이 정도로 그냥 무마될 수 있을까?


내 기대와 달리, 지금도 이런 일이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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