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재밌어지는 순간
일을 하면서 늘 짜증나고 힘든것만은 아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마음이 잘 맞아 즐겁게 일하는 것,
재미있는 일도 짜증나는 갑질도, 함께 공유하고 씹으며,
그리고 내가 모르던 세계에 발을 디디는 순간의 즐거움.
그런 이야기를 오늘은 해볼까 한다.
오랫동안 S사의 몇개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음으로 하게 된 일은 P사의 제과 제빵 과정이었다.
그 사이 해가 바뀌고, 나는 막내를 벗어나 후배들을 받게 되었고, 그 후배 중 한명과 함께 나는 제빵 과정을, 그 후배는 제과 과정을 함께 진행하게 된 것이다.
이러닝의 E도 모르고, 오직 제빵과 제과만 할 줄 아는 내용전문가와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습대상: P사에 입사한 신입 제빵사들
분량: 30분 분량 *20개 차시
기획 포인트: 제과 제빵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실습 과정을 영상으로 넣어준다.
*이때만 해도 텍스트와 이미지 위주의 개발이어서(사실 성우 음성도 별로 안들어감)
거의 전자책에 가까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넣는 것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시스템에서 영상이 무거우니 잘 돌아가지도 않았고...
이렇게 우리는 과정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용전문가가 원고를 주면 우리는 파워포인트에 어떻게 페이지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스토리보드(영화로 말하면 콘티같은 것)를 작성하고, 그걸 다시 틀린 내용이나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내용전문가에게 피드백을 받기 위해 검토를 받는다.
*스토리보드 모형 일부
이런식으로 스토리보드를 제작하는데, 오른쪽 아래에 화면 설명이란 것이 있다. 이걸 보고 개발자들은 개발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검토를 보내면 가끔 전화해서 화를 내시는 내용전문가가 있었다.
"아니 내가 이걸 어떻게 도시 전체를 확대하고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보여줍니까?"
개발자들 보라고 적어놓은 화면설명을 보고,
내용전문가 본인이 해야 하는 줄 알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돈을 조금 받고 이런것 까지 자기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또 낑낑대며 스토리보드에 대해서까지 설명을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갈등을 해결하고 나면 오히려 사이는 돈독해 진다.
P사의 프로젝트가 재미있던 것은 새로 들어온 후배님에게 가이드를 주면서, 황당한 고객님을 설득시키면서 함께 울고 웃었기 때문이다. 동료가 생긴 느낌. 막내를 벗어난 느낌.
파워포인트로 박스 하나만 회전 시켜도 박수를 쳐주는 후배와 함께 하는 일들이 모두 재미있었다.
실습 영상을 찍기위해 우리는 경기도 S시에 위치한 P사의 공장을 방문했다.
호빵맨을 만들던 제빵사처럼 생긴 내용전문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커리큘럼에 있던
단팥빵, 페스츄리, 식빵, 소시지 빵... 등을 만드는 과정을 재료준비부터 오븐에 구워 나오는 것까지 일일이 체크하며 촬영을 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페스츄리의 비밀... (버터와 밀가루 1:1) 다시는 먹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지만,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먹어치울 수 있었다.
소시지빵 반죽에 소시지와 토핑을 얹고 촥촥 자르면 홍해 갈라지듯 촥촥 양쪽으로 갈라지며 우리가 아는 그 모양이 나타날 때 지르는 탄성!
단팥빵에 단팥을 같이 넣어보며 우리는 즐거운 촬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제빵사님은 촬영 내내 구운 빵을 몇개의 봉지에 담아 우리 손에 들려주셨다. 이건 어차피 촬영용으로 찍어서 팔 수 없으니 오늘 고생하신 설계자님들 가지고 가시라고... ㅠ_ㅠ
1년 전 꼬꼬마 시절에 혼자 빵을 먹던 그녀를 생각하니 모든 것이 비교되며
눈물이 콧물이...
우리는 이렇게 든든하게 양손 가득가득 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신나게 빵파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평생 살면서 이런 일을 해볼까? 하는 것들을 경험하고...
눈물젖은 빵의 아픔은 이렇게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이 과정 개발을 끝내고 내 꿈이 꺾이는 일이 발생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