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2)

엄마와 나 사이

by 사이의 고양이

동구밖 큰 나무


엄마의 부모님,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몹시도 어렵게 사셨다.

너무 가난해서 하루 벌어 하루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그 와중에 집안의 대들보 같았던 장남, 큰삼촌을 사고로 잃기도 하셨다.


자식이 5명이었지만 외할머니는 집에서 자식들의 밥을 챙기거나 뒷바라지를 해주실 수 없었다. 매일같이 시장에 나가서 과일이며 나물이며를 파셨다.


엄마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밥을 안쳤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도, 외할머니가 바쁘고 힘드신 걸 아니까 찡찡댄 적도 없다고 했다.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가 집에 계신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그리운 날엔 동구밖 큰 나무 앞에 앉아서 외할머니가 돌아오시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의 사랑에 목마른 아이인 채 어른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다.




기다림의 대물림


동구밖 큰 나무 앞에서 외할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엄마가 있었다.

"네가 뭔데"라는 말에 얼어붙은 채 엄마의 화가 풀리길 기다리던 어린 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살얼음판 같은 평화 속에서 서로를 조심스럽게 피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나는 엄마에게 연민을 느낀다. 엄마도 너무 외롭고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셨다. 그래서 사랑을 받는 법을 몰라서 주는 법도 잘 모르는 어른이 되신 것 같다. 그게 결국 대물림되어서 나에게도 결핍이 되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마음도 아프다.



이해와 용서 사이


그런데 완전히 내가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그게 되었다면, 지금 내가 기억하는 상처들은 무뎌지고, 우리의 관계가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들을 내가 하고 있지 않을까?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 아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것뿐일까. 엄마도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였을 뿐일까.

그렇다면 나는 왜 엄마가 해주신 칭찬은 기억하지 못하고 상처만 기억할까.

내가 엄마를 너무 혹독하게 대하는 걸까. 아니면 엄마가 정말 나에게 상처를 많이 주신 걸까.


이 질문에는 답이 없는 것 같다.




거울 앞에서


거울 앞에 선다.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엄마의 말투가 들린다.

내가 툭툭 내뱉는 말들 속에서 엄마가 살아 숨 쉰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미 너무 닮아버렸다.


사랑하는데 견딜 수 없는 사람. 그게 엄마이고 어쩌면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기다렸고, 나는 엄마를 기다렸고, 나는 연인을 기다렸다.

기다림 속에서 사랑을 배웠고, 기다림 속에서 상처받았다.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누군가를 상처 줬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이의 고양이 '사이' 이야기
◀ 이전 글 : 엄마와 나 사이(1)
▶ 다음 글 : 고양이와 나 사이
이전 09화거울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