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사이
"네가 뭔데 퇴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차를 태워달라고 해!!!"
토요일 오후 엄마가 학교에서 퇴근하셨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대 그때만 해도 주 6일 근무였고, 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토요일은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퇴근하셨다. 학원에 늦을 것 같아서 막 집에 들어오신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아직 옷도 갈아입기 전이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말했다.
"엄마 한 번만 차 태워줘. 학원 늦어."
엄마는 그냥 버스를 타라고 하셨지만 나는 찡찡댔다. 그냥 엄마랑 차 타고 학원에 가고 싶었다. 같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는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으셨나 보다. 기어이 버럭 화를 내시며 그 말을 하셨다.
엄마는 결국 차를 태워주셨다. 우리는 말없이 학원까지 갔고 나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네가 뭐냐'던 그 말이, 그 문장이 왜 20년이 넘은 지금도 이렇게 또렷이 기억나는 걸까.
엄마는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평소엔 편하게 말을 주고받다가도 엄마가 화를 내시면 모든 게 달라졌다. "어떻게 엄마한테!"라는 말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나는 갑자기 조용히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엄마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엄마의 화가 풀리길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날 그 일에 대해서 더 얘기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엄마에게 넌지시 말을 꺼낸 적이 있다, 그때 나 상처받았었다고.
엄마는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너도 참 어지간히 맘이 약하다.
"너 걸어오는데 진짜 네 엄마 보는 것 같았어."
20대 중반쯤부터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는데 얼굴이 엄마 판박이라고 한다. 우리는 핏줄임을 얼굴이 증명하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60이 넘으신 지금도 참 고전적인 미인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내게 외형이 엄마를 닮았다고 하면 그건 참 좋다.
그런데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말투, 화법마저 엄마를 닮았다는 걸 문득문득 자각할 때가 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내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두려워했던 부분이자 지금도 싫은 부분이며 고치고 싶은 부분이다. 나는 엄마같이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툭툭 내뱉는 말들이 엄마를 닮아있는 게 싫다.
엄마의 말을 듣고 있자면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울치료가 되면 좋으련만 그리 쉽게 개선되지는 않으니, 나와 닮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더 숨이 막히고 스스로에 대한 우려로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상처받았던 말들을 남들에게 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내가 혐오스럽다.
엄마는 농담을 모른다. 참 진지한 사람이고, 진지한 게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다.
엄마는 안 되는 것, 무서운 것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것에 부정적이다. 엄마로부터 듣는 말들의 대부분도 부정의 언어였다.
그런 엄마와의 대화는 나에게 참 심각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뿐더러 가끔은 부담스러워서 자주 대화를 길게 하거나 많이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무겁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내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말들 속에서 엄마만의 기준으로 나눈 급을 느껴왔다.
토요일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무한도전을 보고 있었다. 멤버들이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장면에 혼자 깔깔대며 웃고 있는데 엄마가 거실을 지나가시는 기척이 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웃음소리를 줄였다. 엄마가 TV를 보시고 내가 이런 걸 보고 웃고 있는 모습에 한심스러워하지 않을까,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 의식하며. 엄마는 TV를 흘끗 보시더니 별로 관심 없다는 듯 한마디 하셨다. "그런 거 보지 말고 EBS 다큐 같은 거 봐. 그게 교양이지." 나는 완전히 웃음을 멈췄다. 엄마는 이미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먹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모든 게 엄마만의 기준으로 나뉘었다.
클래식은 고급이고 대중음악은 천박했다. 진지한 말투는 교양이고 농담은 체신머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 기준 속에서 나는 항상 부족한 딸이었다.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1등을 해도, 몇 날며칠을 고민해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걸 준비한 선물도, 동생이 어지른 장난감들에 퇴근하신 엄마가 속상하실까 봐 고사리손으로 정리했다고 은근슬쩍 자랑한 내 말에도 엄마는 내가 속으로 그렇게 원하던 칭찬을 선물처럼 주신 적이 없었다.
내가 하루에 4,5시간 밖에 못 자고 처절하게 준비해서 당당히 입학한 대학도, 내가 택한 전공 때문에 엄마에게는 더 경쟁률이 치열한 과를 다니는 동문들에 비해 나는 부족하고 간신히 들어간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다.
가끔 나의 학교가 자랑스러워질 때 엄마에게 농담조로 자랑하면 엄마는 바로 내 학과를 들먹이며 나의 콧대를 한방에 꺾어놓으셨다.
몇 년 전, 돈 때문에 힘든 순간이 있었다. 한 번도 엄마에게 돈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전화로 도움을 구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여유로운 편이었다. 한 달 안으로 갚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도움을 주지 않으셔도 엄마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들 때 기대고 싶고 가족들에게 뭐 그런 거 있잖아...
근데 엄마는 '내가 초래한 문제'라고 하셨다. 내가 잘못했고, 그래서 힘든 거고, '왜' 그랬냐고 물으셨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오죽하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나 스스로도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엄마에게 단 한마디의 위로도 못 받고 비난만 들으니 정말 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 이후 2년간 엄마와 연락하지 않았다. 고향집에도 가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엄마도 좀 조심하시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고.
짧은 전화 통화와 짧은 대화. 뭘 먹었는지, 뭐 했는지, 사건 위주로만 말한다. 서로 생각이나 감정보다는 필요한 말만 딱 하고 전화를 서둘러 끊는다. 대화가 심각해지는 것 같다 싶으면 둘 중 하나가 말을 끊거나 자리를 피한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우리의 평화는 유지되고 있다.
웬만하면 너무 잦게 엄마와 통화를 하지 않으려 템포를 조절한다. 길게 혹은 많은 대화를 하면 잦은 빈도로 논쟁이나 싸움으로 이어지니까.
내가 자라면서 엄마는 분명 칭찬도 해주셨을 거다.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냥 좀 심각하고 부정적인 사람인 거지... 마음 약하고 여린 분이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도 문제가 분명히 있다.
엄마가 내게 해주신 칭찬은 기억나지 않고 내가 상처받은 말만 기억하는 나.
거울 앞에 선다. 남들은 내가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데 나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툭툭 내뱉는 말들 속에서는 엄마가 보인다. 그건 내가 제일 잘 안다.
사랑하는데 견딜 수 없는 사람, 그게 엄마다.
사이의 고양이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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