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아픔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편안함과 사랑 사이

by 사이의 고양이

코넬에게는 안정적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마리안이 만난 남자들은 부유하고 세련돼 보였다.

조건으로 따지면 더 나았다. 관계도 편해 보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잊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끌렸지만 계속 어긋났던 두 사람.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결국 서로를 생각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Normal People》을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더 편한 사람들이 있는데,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자꾸 힘든 그 사람에게만 돌아갔을까.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일까.


편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끌리는 사람만 찾아 헤매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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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없는 밤


돌이켜보니 나도 다르지 않았다.

끌렸던 사람과의 관계는 편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갑자기 연락이 끊길 때가 많았다 회의에 들어간다는 말도 없이 몇 시간씩...

끝나고 나서야 "회의가 있었어"라고 했다. 시작되기 전에 미리 말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관련된 일로 급하게 답을 들어야 할 때에도 나는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알림이 올 때마다 확인하고,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더 힘들었던 건 싸운 후였다.

투닥거린 후 나는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렸다. 서운했지만 보고 싶었다. 먼저 전화하거나 찾아와 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음 날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밤새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카톡을 들어갔다 나왔다 끝없이 반복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게 나만인가 싶었다. 내가 더 좋아하나 싶었다.

이 사람은 이런 싸움을 계기로 점점 나한테 식어가는 건가 싶었다.


괴로웠다.
그런데도 끌렸다.




좋은 사람, 뛰지 않는 심장


반면 편한 사람도 있었다.

성실하고 루틴 있는 삶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일정을 미리 공유해 줬다. "이따가 오후 3시부터 2시간짜리 회의 있어"라고 말해줬다. 그는 예측 가능했고 그래서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대화도 잘 통했고 관심사도 비슷했다. 평일엔 각자 일하고 주말에만 만나는 패턴도 편안했다.

머리로는 생각했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겠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끌리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연락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은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주말 데이트는 점점 의무처럼 느껴졌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 좋은 사람인데, 왜 나는 좋아하지 못할까.




기다림이 사랑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한테 끌렸을까. 왜 안정감을 주는 사람 앞에서는 무뎌졌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사랑을 기다림으로 배웠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우리 딸래미"라고 불려본 기억이 없다. 아빠는 술을 진탕 드신 어느 날 "너보다 니 남동생이 더 좋다"라고 술김에 커밍아웃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기억이 있는 유년시절부터 내 손을 잡아주거나 나를 안아준 기억이 없다. 나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잘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사랑은 애정을 바라고 관심을 구하고 확인받으려 애쓰는 것이 된 것 같다. 기다리는 것이었다.

편안함은 사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쉽게 주어지는 것은 마치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Normal People》 속 마리안과 코넬처럼, 나도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데도 자꾸 힘든 쪽으로 끌렸다.

기다림이 사랑이라고 배운 걸까.


익숙한 아픔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이의 고양이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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