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 식어가는 관능

욕망과 안정 사이

by 사이의 고양이

제주도 마당에서 껴안고 뽀뽀하는 부부를 보며 나는 질투가 났다.

저렇게 오래 함께했는데도 여전히 저럴 수 있다는 게.

한 시도 쉬지 않고 "오빠"를 부르는 이효리.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웃으며 받아주는 이상순.

효리네 민박.jpg


몇 년 전 대히트를 쳤던 예능 시리즈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이상했던 건, 이효리가 정말 쉬지 않고 남편을 불렀다는 것이다. "오빠, 이거 봐." "오빠, 저기." "오빠오빠오빠." 친한 친구한테 재잘대듯,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순은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항상 웃으며 받아줬다.

과거 연애에서는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던 이효리가 이상순에게는 온전히 의지하는 모습.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서로를 찾는 눈빛.

그 장면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정과 열정과 관능이 다 있는 사랑. 저게 가능한 거구나.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게... 진짜일까?
아니면 방송이니까 저런 걸까?




세 가지가 다 있었던 사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우정도, 열정도, 관능도 다 있던 사람.


외부 세계로부터는 철저히 내 편이었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동료와 갈등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줬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지지받는다고 느꼈고 그게 든든했다. 실제로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런 면에서는 분명 우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둘만의 관계에서는 달랐다.

대부분 대척점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연인의 자질'을 판단받는 기분이었다. 내게는 전혀 타격 없는 단어들이 그 사람에게는 불편함을 주었다.


어느 날 그 사람에게 얼굴 마사지기를 해주고 있었다. 반장난 반진심으로 투닥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젤이 부족한 부분이 자극이 됐는지 그 사람이 "아, 따가워"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농담으로 "꼬시다"라고 받아쳤다. 그런데 그 사람은 화가 났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나는 당황했다. 우리 방금까지 투닥거리며 웃고 있었잖아... 긴장을 풀려고 한 농담이었는데 그 사람에겐 자신의 아픔을 무시하는 말로 들렸던 것 같다.


또 다른 날에는 카톡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평소 이모티콘이나 "~", "!!", "♡"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부드러운 말투로 보이려고. 그날도 습관처럼 "~"를 붙여 보냈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날이었고 내 "~" 표시가 빈정거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나는 설명했고 오해를 풀었다. 그 사람도 자신이 과대해석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카톡을 보낼 때마다 꼼꼼히 신경 쓰게 됐다. 이 단어는 괜찮을까, 이 표현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조금씩 위축됐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대화가 어긋났는지조차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의 예시긴 하지만 "꼬시다"도, "~"도,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었다. 서로 너무 달라서 문제의 시발점을 찾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맞춰간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회의가 들었다.

헤어지기 직전에는 그 사람과의 대화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함께 걸을 때 손을 잡으면 여전히 설렜고, 그 사람 얼굴만 봐도 가슴이 뛰었고, 헤어지고 나면 자꾸 생각났다. 대화는 힘들었지만 끌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우정도, 열정도, 관능도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세 가지가 다 있었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우정이 있으니까 쉽게 포기할 수 없었고,
관능이 있으니까 자꾸 그리워졌고,
열정이 있으니까 상처받을 때마다 더 아팠다.


차라리 하나만 있었으면 깔끔하게 정리했을텐데 세 가지가 다 있어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오래, 더 깊이 힘들었다.


결국 나는 견디지 못했다.




이효리의 고백


이효리가 예능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웃으며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공감이 됐다.

"남편이 바람피울까 봐가 아니라, 내가 바람피울까 봐 걱정돼서 제주도 내려갔어요."

그 말에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솔직해서 더 공감됐다. 나도 나를 100% 믿어도 되는 걸까 걱정될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이효리는 결국 제주도에서 남편과 함께,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환경이었지만 한 시도 쉬지 않고 "오빠"를 부르며 의지하고, 친한 친구에게 재잘대듯 끊임없이 말을 걸고, 마당에서 껴안고 뽀뽀하는 모습.

우정도, 열정도, 관능도 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저게 답인 걸까?


세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는 사랑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혹시 처음엔 강렬했다가 시간이 지나며 저렇게 안정된 걸까?
아니면 강렬함을 유지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걸까?




타오르는 평온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관능 없이는 시작조차 안 되는데 관능만으로는 지속도 안 되고, 관능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쩌면 사랑은 완벽한 조합이 아니라 선택과 포기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택하면 뭔가는 포기해야 하는.

하지만 나는 아직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뭘 포기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관능적 끌림이 아예 없는 이성과는, 나는 우정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럼 나는 평생 강렬함을 찾아 헤매는 걸까? 아니면 언젠가는, 편안함 속에서도 관능이 자라나는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우정과 열정과 관능이 적절하게 섞인 형태의 사랑. 그건 타오르는 평온 같은 거였다.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동시에 고요한... 함께 존재할 수 없는 모순.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이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사랑은 완벽한 조합을 찾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는 거라는 것.

이효리와 이상순도 어쩌면 완벽하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그들은 서로의 불완전함을 견디는 법을 배웠을지도.


이효리처럼 한 시도 쉬지 않고 마음껏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이상순처럼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그런 사랑을,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을까?
재혼하면 가만두지 않겠어.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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