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과 끌림 사이
손가락이 닿는 순간, 온몸이 저릿했다.
영화 『연인』을 보던 중이었다.
리앙이 소녀를 차에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길. 소녀는 시트에 손을 내려둔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리앙은 그 손을 바라보며 긴장한 얼굴로 조금씩 떨면서 자신의 손을 소녀의 손 옆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손가락이 소녀의 손가락에 닿았다. 소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말없이 깍지를 꼈다.
그 순간 나는 리앙이 소녀에게 반했구나, 사랑을 느끼고 있구나를 가슴으로 이해했다. 화면 속 그들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를 끄고 나니 이상한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저런 전율을 느꼈을까?
올해 6월부터 일을 쉬면서 친구들의 권유로 소개팅 앱을 깔았고, 유료 모임에도 나갔다.
만나기 전부터 상대의 나이, 키, 직업, 수입 같은 정보들이 공유되었다. 사람들은 그 정보를 보고 선호를 구분했고 나도 그렇게 걸러진 사람들을 만났다.
외모도 준수하고, 대화도 괜찮고, 나이와 직업도 적당한 사람들.
그런데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조건은 좋았다. 머리로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첫 만남 후 다음 약속을 잡자는 상대에게 응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2번, 3번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에게 미안할 정도로.
조건이 의미가 없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했고, 1인 창업을 했고, 경매와 주식을 시작하며 투자 공부에 몰두했다. 그것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30대의 '현실적인 연애 경험'이 비어있게 되었다.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염두에 둔 그런 관계 말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뭔가 둔해진 걸까. 아니면 애초에 나는 그런 감각이 약한 사람이었던 걸까.
20대엔 분명 누군가에게 끌렸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희미하다.
영화 속 손끝의 떨림을 보며 전율했던 나.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는 그 전율이 1도 없었던 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지금 나에게는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끌리는 사람.
안 지 좀 되었고 함께 보낸 추억도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손끝이 떨린다. 영화 속 리앙이 느꼈을 그 전율을 나도 안다. 그런데 인생의 파트너로까지 발전하는 걸 생각해 보면, 성장 배경도 가치관도 생활습관도 너무 다른 사람이라 서로 힘들 거라는 게 빤히 보인다.
또 하나는 최근에 알게 된 사람.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다. 외모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다정함도 있다. 조건이나 생활습관, 성향을 생각하면 좋은 인생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손을 잡고 싶기도 하다.
다만 첫 번째 사람에 비하면 덜 강렬하다. 그게 나쁜 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게 더 지속 가능한 사랑의 형태일 수도...
그래서 나는 요즘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관능에 끌리지 않아도, 편안함이나 다른 요소로 지속적인 만남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걸까? 강렬한 떨림이 조금 덜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관능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잃어버린 걸까?
영화 속 리앙처럼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떨렸던 감각.
나는 그걸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늦은 걸까?
편안하고 닮아있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아니면 강렬하게 끌리는 사람을 따라가는 게 진짜 사랑일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나는 지금, 관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두렵다는 것.
강렬한 떨림이 없어도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을까?
사이의 고양이 '사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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