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알아보지 못했던 시간들

사랑과 무지 사이

by 사이의 고양이

뒤라스의 『연인』을 읽었다. 사실 소설은 어려웠다. 뒤죽박죽 끊어지는 문체와 시간을 오가는 의식의 흐름. 감정에 온전히 동화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소설 원작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달랐다.


제인 마치가 연기한 '마르그리트'의 얼굴과 양가휘가 연기한 부자 중국인 '리앙'의 눈빛이 소설이 전하지 못한 무언가를 내게 건넸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너무 아렸다. 사랑이 도대체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는데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앙의 눈을 보면서는 사랑의 고통마저 느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를 욕망하는 마음조차 없다면 나는 죽은 거다.

리앙의 대사가 머리론 이해가 안 가는데 가슴으론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내가 사랑이 가능한 사람이긴 한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뒤늦은 깨달음과 상실감


리앙의 결혼식을 멀찍이서 보고 있는 마르그리트. 그런 마르그리트를 발견하고 리앙의 눈이 커지고 눈시울이 붉어질 때, 나도 함께 무너졌다.

배를 타고 떠나는 소녀를 몰래 차 안에서 하염없이 지켜보는 리앙의 모습을 보며 큰 상실감을 느꼈다. 가슴이 뚫리고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그리트가 배에서 마침내 사랑이었음을 가슴으로 깨닫고 울 때, 나도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녀의 뒤늦은 깨달음이 이토록 아팠을까.




'우리 딸래미'라 불리고 싶었던 아이


나의 부모님은 성장과정 동안 나에게 물질적으로 큰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서포트해 주셨다. 지금도 감사하게 여기고 그 부분은 부모님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마치 영화 속 소녀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낀 경험은 없는 것 같다. 딱히 사랑받고 자랐다는 느낌이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은 내가 기억이 있던 유년 시절부터 내 손을 잡아주거나, 나를 안아주거나,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우리 딸래미, 우리 OO이' 같은 애정이 묻어나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주신 적이 없다.

몇 년 전에 나는 그런 호칭으로 한 번이라도 불려보고 싶었다고 부모님께 고백한 적이 있다.


나와 엄마의 관계보다 훨씬 마음의 거리가 멀고 데면데면한 아빠는 내가 20대 때 한 번은 술을 잔뜩 드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너보다는 나랑 같이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고 당구도 쳐주면서 놀아줄 수 있는 니 생이 솔직히 더 좋다." 내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나에게는 진실이나 다름없지만 타인에게는 피해의식으로도 보일 법한 이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나는 별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로 나를 정의한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까


돌이켜보면 보통 가족들에게 표현하는 애정과 정서적 지지를 받아온 친구들이 애정을 잘 주고받고 계산 없이 표현하고 연인에게 사랑을 퍼부을 줄 알았던 것 같다. 반면 나는 그 모든 것이 서툴고 부족하여 잘 못하며, 인간을 애정하고 사랑한다는 게 지금까지도 솔직히 고백하건대... 잘 모르겠다.


과거의 내 연애를 돌이켜보면 연인의 사랑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온전히 고마워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 든다.

나는 사랑받아본 적이 있을까?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까?




내가 놓친 사랑은 없을까


영화 속에서 마르그리트는 리앙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돈 때문에 만나는 거라 자신과 가족들에게 말한다. 감히 추측하건대 소녀의 유년 시절 정서적 경험이 나와 유사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뭔지 체험하지 못해 알지 못한 무지에서의 안타까운 실수였을 것이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던 순간들을 놓치고 뒤늦게 깨닫는다는 것. 그녀의 가련한 시간들에 나도 모르게 과몰입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마르그리트를 보며, 사랑이 눈앞에 있었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이 오고 있는데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줄 몰랐던 시간들.


내가 놓친 사랑은 없을까?
그리고 언젠가 나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될까?


그래서 그토록 가슴이 아팠던 걸까. 배 위에서 뒤늦게 깨닫고 우는 소녀의 눈물이 내 눈물이기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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