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조건을 묻지 않는다

고양이와 나 사이

by 사이의 고양이

고양이를 생각하면 1초 만에 눈물이 난다. 사람한테는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두 마리가 나를 반긴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늦었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묻지 않는다. 그저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반갑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늘 녹초가 된다. 적절한 반응을 고르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내 말투를 조절하느라 에너지가 바닥난다. 조건도 따지고 이유도 찾아야 하고 설명도 해야 한다.


근데 고양이는 그냥 좋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고 조건을 맞출 필요도 없고 상처받을 염려도 없다.

이상하다.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고양이는 이렇게 단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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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묻지 않는 존재


고양이를 처음 입양했을 때 걱정이 많았다. 내가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할까.

그런데 고양이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직업도 외모도 성격도 묻지 않았다. 오늘 내가 일을 잘했는지 누구에게 상처받았는지 미래가 불안한 지도 관심 없었다.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나를 반겼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앞에서는 늘 부족했다. 코피 터지게 공부해도, 서울대를 가도, 뭘 해도 충분하지 않았다. 고양이들 앞에서 나는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연애에서는 늘 조건을 따졌다. 이 사람과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가치관이 맞을까, 서로에게 도움이 될까.

조건이 맞으면 좋아해야 하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끌리는 사람은 조건이 안 맞아 함께하기 힘들었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30년 넘게 알고 지낸 그 애와도 결국 우선순위와 일정을 두고 서운해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는 건 당연한 의무고, 그 외에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준 게 뭐가 있나 싶기도 한데 고양이들은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대가 없는 애정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용서하는 법


물론 고양이들도 완벽하지 않다.


에너지가 넘칠 때면 우다다를 하다가 노트북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사냥감이라도 되는 양 내 아킬레스건을 문다. 수많은 스크래처를 놔두고 굳이 소파를 북북 긁으며 손톱을 간다. 그럴 때면 얄미워서 코를 살짝 때린다.


하지만 조금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 옆으로 온다. 몸을 비비고 골골거리는 소리를 낸다. 내가 잠깐 자기들을 아프게 했어도 너무 당연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용서하고 다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부끄러워진다. 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상처받으면 오래 기억하고, 서운하면 먼저 멀어지고, 한 번 실망하면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


엄마가 해주신 칭찬은 기억나지 않고 상처받은 말만 기억하는 나. 고양이들은 내가 코를 살짝 때린 것도 금방 잊고 다시 내 옆으로 온다.

누가 더 어른인지 모르겠다.


그 애와의 마지막 대화처럼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라고 쌓인 걸 한꺼번에 쏟아내곤 한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쌓아두지 않는다.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나를 대한다.


나는 고양이들한테 이런 맹목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걸까.




질리지 않는 이유


이상한 건 나는 원래 쉽게 질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새로 산 옷도 몇 번 입으면 시들해진다. 맛집도 한 번 가면 충분하고 영화도 두 번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질리지 않는다. 매일 본다.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여전히 예쁘다. 1밀리도 빠짐없이 전부 예쁘다. 창가에 앉아 햇빛을 쬐는 모습도, 세수하는 모습도, 하품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친구들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내면서 매번 "우리 애들 진짜 예쁘다"라고 말한다. 과장도 아니고 진심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면 내가 외로워서 고양이한테 과도하게 매달리는 걸까.

고양이들은 선택권이 없다. 나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걸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만약 이게 정말 사랑이라면 나는 왜 사람한테는 이렇게 못 하는 걸까. 어쩌면 고양이는 나를 떠날 수 없으니까 안전하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 먼저 방어하는 거고.




두려운 순수함


가끔 밤에 이런 상상을 한다.


언젠가 내 고양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어떨까?


그 생각만으로 눈물이 난다. 1초의 멈칫거림도 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나는 원래 잘 울지 않는다. 슬픈 영화를 봐도 힘든 일이 있어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근데 고양이를 생각하면 너무 쉽게 운다. 이 아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면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아프다.


그래서 가끔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너무 사랑하면 잃었을 때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연습이라도 하듯 덜 들여다보려 한다. 고양이들이 다가와도 가볍게 쓰다듬고 돌아서려 한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결국 안아 올리고 얼굴을 묻고 한참을 그렇게 있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상실을 두려워하며 지금의 관계마저 방어하려 드는 내가 이상하다.


고양이들은 지금도 내 옆에서 자고 있다. 한 마리는 내 무릎에 턱을 걸치고, 한 마리는 키보드 옆에 웅크리고 있다. 숨 쉬는 소리가 고요하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이 아이들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또 불안하다. 이 평화가 언젠가 끝날 거라는 걸 알고, 그때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고, 어쩌면 지금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는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고양이들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사랑하는 걸까.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서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고양이와 나 사이에는 조건도 설명도 필요 없다. 그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외로움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눈물이 두렵다. 언젠가 이마저 잃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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