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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Sep 07. 2020

서평.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

“나는 왜 마지막 강의를 하고 싶을까? 살아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아직도 강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싶어서? 다 맞아. 아픈 사자도 포효할 수 있는지 보고 싶어. 이건 자긍심과 자신감의 문제야. 허영심과 완전히 같은 건 아니야.” 카네기멜론 대학교 컴퓨터공학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으로 3-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포시가 허영심 때문에 1시간 마지막 강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강의에 바탕한 이 얇은 자서전은 흔한 정치인의 자서전 형식의 두꺼운 자랑전보다 나았다.


가족과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 책에 많이 들어 있어 어느 교수의 강의라기보다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같았다. 어릴 때 미식축구를 배웠던 포시는 앞부분에 헤드페이크(head-fake) 개념을 설명한다. 헤드페이크란 미식축구에서 상대편을 속이는 기술이다. 첫 번째  헤드페이크 의미는 머리를 한쪽으로 보내면서 그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몸을 다른쪽으로 트는 기술을 말한다. 두 번째  헤드페이크 의미는 진짜 의도를 상대방이 뒤늦게 눈치채게 하는 것이다. 포시는 이 강의에서 두 가지 헤드페이크를 한다. 첫 번째 헤드페이크는 이 강의는 꿈을 이루는 것에 대한 얘기라고 했지만, 사실 인생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헤드페이크는 이 강의는 청중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자신의 세 자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힌트는 여러 군데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 아내, 아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는 마치 자신의 자녀에게 너의 조부모님은 이런 분이었고 나는 이런분들께 사랑받았으며, 너의 어머니를 나는 이렇게 만났고 서로 사랑했으며, 너희들과는 이렇게 힘든 또는 쑥 나오는 분만과정을 통해 만났으며,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게 느껴졌다. 6살, 3살, 1살의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선물을 남기려는 것같았다. 그래서 책 표지가 선물 포장같은가?


일반인이 아닌 자식을 위한 마지막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시는 자식같이 학생들을 챙긴 것같다. 자신이 종신교수가 되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연구팀 학생들을 1주일 동안 디즈니월드에 데려가는 교수가 또 있을까.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학생들에게 교훈을 남겼는데 그 수가 무려 31개다. 포시는 어릴 때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미식축구 코치 그램과의 추억을 몇 번 상기하는데, 포시의 조언 역시 중요한 기본이다. 31개 조언을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눠보자면 1) 즐길 것 / 긍정적일 것 / 모험할 것, 2) 네 수준보다 낮은 일자리는 없다 / 불평하지 말 것 / 더 열심히 노력할 것 / 포기하지 말 것 / 벽은 네가 얼마나 간절한지 보고 간절하지 않은 다른 사람을 멈추기 위한 것 3) 사람들의 장점을 보려고 할 것 / 비판에 감사할 것 / 진실을 말할 것 / 친절할 것 / 도와줄 것 / 기여할 것에 대한 내용이다. 교훈이 정말 너무 뻔한 거 아녜요? 라고 반문하더라도 포시 스스로 “나는 클리셰를 사랑해. 클리셰는 옳아. 뻔한 걸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중요해”라고 했으니 교훈이 뻔하다는 게 그에게는 칭찬일 것이다.


말하는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더 존경받듯이 (실제 포시는 상대방의 말보다 행동을 보라고 조언한다), 포시의 마지막 강의가 인기있는 이유는 교훈적인 내용보다 췌장암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포시의 의사는 포시의 태도를 보고 “긍정주의과 현실주의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이라고 했다. 몇 달 후 세상을 떠날 것을 알면서도 포시는 일상처럼  아내와 자녀를 대하고, 생일 파티도 하고, 차도 새로 사고, 친구들과 주말 여행도 갔다. 자기 연민이나 부정,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몇 달 남은 여생을 즐기고, 긍정적이고, 모험했던, 즉 자신이 남긴 교훈을 사망 몇 달을 남기고도 그대로 살았다. 책 곳곳에는 포시의 유머가 보인다. 이 와중에도 유머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쾌활해 보였다. 시간을 소중히 한다가 즐겁게 산다와 동일한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우울해해도 6개월 후에 죽고, 즐거워해도 6개월 후에 죽는다면, 즐겁게 살다가 6개월 후에 죽는 것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는 것이다. 내가 가진 건 시간,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코로나와 태풍으로 우울해하기 쉬울 이 시기에, 포시뿐만이 아니라 임종을 맞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뻔한 조언대로,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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