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냉정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기계같다”,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동물같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보다 더 따뜻할 수 있고, 동물이 인간보다 더 다정할 수 있다고 본다. 방문은 커녕 연락도 되지 않는 자식보다 안마기가 더 좋을 수 있고, 대화할 때마다 자기 말만 하는 친구보다 내 품에 안겨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을 들어주는 반려견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혹시 우리가 인간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인간적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답다
처음에는 인간이 기계를 보는 시선이 아닌 기계가 인간을 보는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에 감정이입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반려견의 입장에서 보니 훨씬 더 감정이입이 가능했다. 주인공 클라라는 부잣집 아이들의 외로움을 줄여주고 사교성을 높여주기 위해 제작된 AI이다. AI 매장에 진열된 클라라는 어느 날 유전자 편집 부작용으로 몸이 오히려 허약해진 아이 조시와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에게 구매된다. 클라라의 관찰력은 기계답게 정확해서 조시의 걸음걸이와 말투까지 따라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놀랍지 않지만 놀라운 것은 클라라가 조시는 물론 사람들을 관찰해서 상대방이 슬픈지, 기쁜지 등 감정 또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여보세요”라는 한 마디를 평범하게 말했다고 생각하지만, 내 어머니는 “무슨 안좋은 일 있었어?” 또는 “좋은 일 있구나!”라고 바로 알아챈다. 인간이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클라라도 할 수 있다.
대체가능성
인간이 인간을, 혹은 기계가 인간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러 관계를 통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각자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 부모는 자식이 성적이 높길 바라고, 상사는 직원이 실적이 높길 바라고, 애인은 애인이 배려해주길 바란다. 조시의 어머니 크리시가 클라라를 구매한 이유는 딸 조시를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크리시에게는 아픔이 있다. 첫째 딸 샐도 유전자 편집 부작용으로 빨리 잃었고, 잃은 후 기계인형으로 대체하려고 했다. 둘째 딸 조시 역시 죽어가고 있었으며 이제는 업그레이드된 AI 클라라로 조시를 대체하려고 한다. 딸 흉내를 내보라고 하고, 딸의 외모를 만든 껍질에 들어가서 조시가 되면 본인은 물론 조시의 남자친구 릭의 사랑도 받을 수 있다고 클라라를 설득한다. 이 부분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자식의 잃는 슬픔도 있겠지만 아픈 자식 외모를 스캔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게 하거나 클라라를 구매하는 시간과 노력 대신 조시와 한 번 더 눈 마쥐고, 한 번 더 밥을 먹고, 한 번 더 대화하는 게 정말 인간다운 엄마 아닐까.
태양의 의미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책에서 AI 클라라는 태양에게 자꾸 기도한다. 흔히 인간이 하는 “합격하게 해주세요” 혹은 “부자되게 해주세요”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시가 낫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길거리 거지 아저씨와 유기견이 햇빛을 받자 다시 살아난 것처럼 잠에서 깬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햇빛이 이들을 치유했다고 믿고 강렬한 햇살을 보고 “조시가 건강하게 해주세요” 염원한다. 실제 아파 누워있던 조시는 클라라가 커튼을 열어젖히자 깨어난다.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가장 원시적인 종교이다. 가장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자기학습이 가능한 AI 클라라가 하고 있었다. AI다운 혹은 기계다운 행동이라면 기도를 하기보다 최신 의학 정보에 기반해 치료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AI 클라라는 간절하게 기도했고, 자신을 희생했다. 믿는다, 희망한다, 기도한다 – 이런 마음과 행동이 미신같아 보이고 어리석어보일 수 있더라도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간성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