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
100세 시대에 60세에 은퇴하면 그 4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은 출근하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야 하)지만 출근할 곳이 없는 경우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가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 나이가 들더라도 하고 싶은 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일이라는 개념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봉사든 취미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주는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몇 살까지 일할 것인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라면 은퇴 후에도 고문으로 일하는 등 경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 외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젊을 때 바짝 일하고 자산을 만들고 은퇴해 수입이 적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같다. 지금 하고 있는 분야의 선배님들을 보면 60세까지 일하시고 있고 애초에 이 직업을 정할 때 그 때까지 일하다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었다. 하지만 가끔은 빨리 은퇴하고 여유롭지 않아도 소박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노인이 한 일
이 책의 주인공 노인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바다로 나가지? 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계속 낚시를 하지? 왜 자신이 탄 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으려고 목숨을 걸지? 결국 상어떼에 살점을 뜯겨 가시만 남은 청새치를 육지로 데려왔으니 허무하지 않은가? 주인공 노인과 내 인생 가치관은 거의 대척점에 있을만큼 다르다. 일단 나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물고기가 잡힌다면 바다로 나갈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잡히지 않는다면 노인이 기다린 84일이 아닌 8일만에 다른 등장인물 소년처럼 다른 배로 바꾸어 탔을 것이다. 청새치를 잡으려다 힘들면 나는 빨리 포기하고 육지로 돌아와 다른 할 일을 찾았을 것이다. 청새치를 잡았지만 결국 가시만 남고 사람들이 상어를 잡은 게 아니냐고 오해를 할 때 나는 한숨을 쉬며 해명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노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기잡는 일에 대한 자긍심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다로 나가서 낚시하는 것은 노인의 존재 이유였다. 낚시가 나고 내가 낚시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혼자 맨 손으로 낚시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하지만 내게는 수단으로 보였던 낚시 그 자체가 노인의 목적이었다. 돈과 마찬가지로 평판도 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 남이 내가 잡은 청새치를 보지 못했고, 심지어 뼈대만 남아 상어로 오인했을 때에도, 노인은 자신이 잡은 청새치가 자신이 탄 배보다 크다고 자랑하지 않았으며, 상어가 아니라 청새치라고 해명하지도 않았다. 돈과 명예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노인이기에 가능해보이는 일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돈도 명예도 더 이상 미끼가 아니라, 아이고 의미 없다, 라고 말하는 경지가 오나보다. 노인에게는 낚시 활동과 소년이 있다. 소년은 자신을 “최고의 낚시꾼"으로 보고 훌륭하고 위대한 낚시꾼이 있더라도 “산티아고는 단 하나뿐이지요"하면서 산티아고 노인을 믿고 따르고 지지해준다. 2030 청년이나 5060 노인이었다면 소년처럼 순수하게 노인을 믿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부 활동이 혹자에게는 쌀도 밥도 나오지 않는 쓸모없는 일일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 회사일이든 서평쓰는 일이든 - 돈과 명예를 가진 이에게는 쓸데없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즐기면, 일하는 과정 자체를 목적이고 그 목적을 즐기면 그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인생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가 하는 일에 묵묵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그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인생이다. 어떤 일이든 자긍심을 갖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