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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Oct 30. 2020

서평. 마음을 치료하는 법, 로리 고틀립

다른 정신의학, 심리학 책은 읽으면서 내가 나를 수술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이번 책은 시트콤을 보는 것같았다. 그럴만하게도 작가는 현 심리치료사 전 방송제작자여서 이야기가 쉽게 전개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편집되고, 각 장마다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분위기의 문장으로 끝나서 얇지 않은 두께인 책을 마치 미드 몰아보듯 읽었다.


제일 재밌었던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인 심리치료사가 다른 심리치료사에게 심리치료를 받는 부분이 아니라 치료를 받기 전 자신의 실화였다. 30대 후반. 아이를 갖고 싶은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가장 빠른 해결책인 정자은행을 찾는다. 물건 쇼핑하듯 외모, 학력, 성격 등 정자 기증자 스펙을 깐깐하게 살피다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정자 상품을 발견한다. 근데 “품절”이다. 그 정자 상품은 인기 폭발이라 “재고”가 다시 채워질 때까지 몇 개월을 기다리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러다 주변에 그나마 괜찮은 남자에게 정자 기증을 요청하는데 남자는 얘기를 듣고 멘붕이 된다. 남자는 제안을 수락했지만 결국 잠수를 타고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정자은행을 찾는다. 운이 좋게도 한 고객이 그 정자 상품을 개봉하기 전에 “반품"한 덕분에 작가는 임신 및 출산에 성공한다. 정자은행은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작가 본인은 절박했겠지만 나는 이야기는 물론 정자 품절, 재고, 대기자 명단, 반품 등 표현이 웃겼다. 


이제 핵심이다. 왜 심리치료사가 심리치료를 받았을까? 작가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로부터 갑자기 차이는데 예상치못한 상황에 충격을 받아 심리치료사를 찾는다. 심리치료사는 작가의 친구들처럼 “남자가 XXX네" 하고 같이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결혼할 의사가 없었다는 말과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왜 보지 못했는지, 왜 이 이별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그 뿌리를 파헤친다. 작가는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본인도 심리치료사이기 때문에 다른 환자를 보는데 환자들의 이야기도 다양하다. 직장에서는 승승장구하지만 집에서는 아내와 소통이 부족하고 불면증을 겪는 40대 남성 존 John, 신혼부부인데 사망선고를 30대 여성 줄리아 Julia, 가족도 친구도 없이 고립되어 사는 60대 여성 리타 Rita, 술과 남자에게 중독된 20대 여성 샬롯 Charlotte은 각각의 불행이 있다. 작가의 이별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듯, 작가의 환자들이 겪는 문제도 사실 나 자신을 알기 위한 문고리에 불과하다. 문을 열고 깊이 들어가면 자식의 사망으로 인한 상실감, 본업인 종신 교수직이 아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마트 서비스업에서 느끼는 즐거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외면했던 죄책감, 부모로부터 정서적 안정을 받지 못해 자신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의존성이 있었다. 환자들은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방어기제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숨기거나 회피했었다. 작가 본인도 1년에 걸친 치료를 통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다.


심리치료의 본질은 내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는 심리치료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집중하고, 마음을 알아채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에 불자인 나는 다행히 심리치료가 필요 없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마음을 놓칠 때가 있으므로, 그리고 마음을 알아채더라도 표현하는 것에는 서툴기 때문에 계속 수행해야겠다. 예전에 정신과의사, 심리치료사 직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주변사람들이 나에게는 가면을 벗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잘 관찰하고 들어야겠다. 그 전에 나부터 가면을 벗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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