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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Nov 03. 2020

서평. 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권력있는 자는 권력없는 자의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의도 또는 비의도적으로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모른다. 그 입장을 상상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근거 없는 추측은 사람을 죽인다. “너 OO했지?”처럼 질문으로 위장한 총에 쏘인 적이 나 또한 여러 번이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까지 죽은 사람들도 있다. 트레이본 마틴, 에릭 가너, 마이클 브라운,  조지 플로이드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연예인도 아닌 민간인 이름을 아는 이유는 이들 모두 비무장 상태였지만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총기 사망 또는 질식사했고, 경찰 대부분이 유죄 판결은 커녕 불기소 처분을 받아 미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흑인 인권 시위가(Black Lives Matter)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지도자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임기 동안 미국 사회 곳곳에서 인종 차별 사건 빈도가 더 높아졌다. 이 소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럽계 미국인 - 흔히 흑인과 백인 - 사이에 깊이 패인 골을 보여준다. 2020년 11월 3일 미 대선이 끝나면 증오가 줄어들까?


생각을 말할 자유


주인공 스타 Starr 는 16살 흑인 여학생이다. 마약, 갱단이 있는 슬럼가에 사는 스타는 동네 친구들 파티에 갔다가 흑인 친구 칼릴 Khalil 이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귀가하고 있었다. 갑자기 백인 경찰이 차를 세우라고 했다. 칼릴이 경찰의 명령에 따라 차량에서 내렸다가 차 안에 있는 스타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면서 경찰로부터 등을 보이며 차량 문을 다시 열려고 했을 때, 경찰은 칼릴이 차에서 총을 꺼낸다고 착각하고 칼릴의 등에 총을 3번 쏘고 칼릴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사망 이후 뉴스에서는 살해한 경찰 얘기는 커녕 살해당한 칼릴이 마약거래상이었다는 보도만 무성하다. 침묵을 지키다가 참다못한 스타가 대배심원 앞에서 사건을 증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역시나)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정의롭지 못한 판결에 대해 분노한 시민은 시위를 벌이고, 스타는 자신의 증언이 소용없다는데 무력감을 느끼고 시위에 참여하며 침묵했던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흑인 시민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이 빈번한 동네였기 때문에 스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경찰 앞에서는 손을 보일 것, 돌발 행동을 하지 않고 천천히 움직일 것, 발언권이 주어졌을 때만 발언할 것이라는 규칙을 착실히 따른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항상 살얼음판에 걸어야 하고,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니 답답하다. 경찰은 시민을 지켜주고 도와주는 집단이어야 하는데 흑인은 위험하다, 잠재적 범죄자이다라는 편견 및 흑인 차별로 인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살해가 소설이 나오기 전이나 후에나 계속되고 있다.


친구를 선택할 자유


경찰과 시민의 대치상황보다 소설에서 더 재밌던 것은 스타와 두 백인 친구와의 관계이다. 스타의 부모는 교육 때문에 스타를 백인 중심의 사립고등학교로 보낸다. 스타는 동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자신이 백인 학교에 다니는 티를 덜 내려고 하고, 학교에 있을 때는 백인 절친 헤일리 Hailey 와 백인 남친 크리스 Chris 에게 흑인 티를 덜 내려고 한다. 헤일리는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가 없었다면 멍청하게 흑인 차별 발언을 계속한다. 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스타가 기분이 나빠하니까 웃자고 한 농담인데 왜 죽자고 덤비냐며 기분이 나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소설 막판에 헤일리가 스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데, 뭐가 미안하냐고 스타가 묻자, 너가 기분 나쁘게 생각한 것에 대해 유감이다, 라고 한다. 어이가 없네. 자신이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한게 아니고 너가 그렇게 느껴서 미안하다는 것은 아직도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매번 헤일리에게 끌려다니고, 양보하고, 주장을 굽히던 스타는 드디어 헤일리와 절교하기로 선택한다. 통쾌했던 순간이다. 현재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고, 관계에서 받는 즐거움보다 상처가 더 크다면, 몇 번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절대 변하지 않는다면 절교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반면, 스타는 처음에 남자친구 크리스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크리스와 헤어질까 하다가 크리스가 스타와 흑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심지어 백인 인권 시위에 참여하기까지 해서 계속 만나기로 선택한다. 백인과 흑인의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져있는 것같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흑인 친구들과 백인 친구들이 만나 서로 이해되지 않는 점을 비난 아닌 질문하는 장면이다. 무시하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 호기심을 갖고 질문한다면 인종 대통합이라는 이상은 이루지 못해도 최소한 적대관계는 줄일 수 있을 것같다.


이 책은 차별받는 인종에 대한 차별하는 인종의 무지를 다루며 한 래퍼의 가사를 따왔다 “THUG LIFE 깡패 인생” 각 앞글자를 따 “The Hate that U Give Little Infants Fucks Everybody 당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준 혐오가 모두를 망친다”라고 썼다. 모르면 물으면 되는데 싫어서, 두려워서, 귀찮아서 대화하지 않는 건 인종 뿐만 아니라 나이, 세대, 성별, 지위, 동네, 도시, 국가 등 배경이 달라 생각이 다를 때 보이는 흔한 반응이다. 오해 때문에 멀어진 사람들이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누구를 보낼지, 옆에 둘지 잘 구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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