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맨스필드 파크, 제인 오스틴

by 카멜레온

나와 환경이 부딪힐 때 크게 두 가지 반응을 할 수 있다: 1 저항한다 2 적응한다. 우리는 그 사이 회색지대에서 선택한다.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을 때 우리는 크게 화내거나, 예의있게 말하거나, 침묵하고 가만히 있거나, 떠날 수 있다. 하지만 크게 화내면 상대방은 더 크게 분노할 수 있고, 예의있게 말해도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고,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은 더 불편해지고, 떠난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사람을 또 만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하거나 짐짝이 되거나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패니 Fanny 는 어떤 유형일까.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세계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그래서 생존하기 위한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지 않으면 수입 없이 밥만 먹는 짐짝이 되었다. 그래서 결혼 과정은 취직과 유사했고, 구직자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하듯, 패니의 둘째 이모도 부잣집 아들 토마스 버트럼 경 Sir Thomas Bertram 과 결혼해 레이디 버트럼 Lady Bertram 이 된다. 당시 자수성가란 거의 없었으며 귀족 집안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고 딸은 결혼시켜 그야말로 다른 집안의 남, 즉 출가외인이 되었다. 첫째 이모는 성직자와 결혼해 노리스 부인으로 Mrs. Norris 검소하게 살다가 남편이 별세한 후 동생네 집에서 여유있게 살게 된다. 반면 세자매 중 셋째, 패니의 엄마는 사랑을 쫓아 가난한 집 아들과 결혼해 프라이스 부인으로 Mrs. Price 가난하게 산다. 패니의 남매는 자신을 포함해 무려 아홉이었고 먹을 입이 많아 가세는 더 기울어졌다. 결국 패니는 10살 때 자매 셋 중 형편이 제일 좋은 둘째 이모와 토마스 경 댁에서 얹혀 산다.


귀족들의 실체


버트럼 가문댁에 사는 이모부, 이모 두 명, 그리고 사촌 네 명 - 톰 Tom, 에드먼드 Edmund, 마리아 Maria, 줄리아 Julia - 은 패니를 학대하지는 않지만 무시하는 건 분명하다. 패니가 사촌들과 함께 놀려고 하면 매번 같이 놀 수준이 아니라는 눈치를 받았고, 안주인 레이디 버트럼의 심부름꾼의 역할을 담당하며 항상 집을 살금살금 다녀 마치 이 집 하녀인 듯했다. 다행이 에드먼드 사촌오빠가 패니를 친절하게 대해주긴 했지만, 그래서 패니는 에드먼드를 좋아하지만, 에드먼드의 태도도 새로 온 손님들을 계기로 바뀐다. 도시에서 온 부유하고 세련된 크로포드 댁 헨리 Henry 와 메리 Mary 가 등장하면서 버트럼 가문 사람들은 크로포드 남매에게 빠진다. 부잣집 아들 Rushworth와 이미 약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 딸 마리아와 아직 미혼인 둘째 딸 줄리아 모두 헨리를 좋아하게 된다. 잘생긴 헨리는 둘 사이를 오가며 즐긴다. 에드먼드는 메리의 화려한 외모에 반해 메리의 이기적인 행동도 에드먼드 눈에는 배려있는 행동으로 보며 메리를 아내로 생각할만큼 좋아하게 된다. 반면 패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에드먼드가 메리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고, 헨리의 바람기를 꿰뚫어보고 끄떡도 하지 않자, 헨리는 패니에게 네가 “감히" 나한테 안넘어와? 라는 오기와 재미로 계속 청혼하지만 패니는 계속 거절한다. 이모부 버트럼 경 외 모든 주변 사람들도 네가 “감히" 헨리의 청혼을 거절해? 하며 헨리의 청혼을 승낙하는 것은 “의무”라며 패니를 압박한다.


소리없이 강한 분별력


반짝이는 크로포드 남매에게 현혹되지 않은 유일한 한 사람은 패니이다. 헨리의 패니에 대한 열렬한 구애가 장난임을 증명하듯 헨리는 이미 결혼한 메리와 도망가 동거한다. 하지만 곧 그 관계도 끝나 메리는 러시워드와 이혼하고 큰 소리만 치던 노리스 부인과 살게 된다. 패니는 수줍어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아 매력 없는 주인공으로 얼핏 보이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심지와 가치관이 있고, 외부 사람들의 압박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는 내적으로 매우 단단한 인물이다. 부자와 결혼했지만 항상 무기력하게 졸고 있는 레이디 버트럼보다, 부자와 결혼했지만 지식도 매력도 없는 러시워스와 결혼하는 바람에 결국 바람이 난 마리아보다, 외모는 눈에 띄게 예뻐서 쳐다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이지만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둘째 아들 에드먼드에게 성직자보다 변호사를 권유하고, 돈을 가장 우선시하기 때문에 첫째 아들 톰의 사망 가능성을 결혼 후 둘째 아들에게, 즉 결혼 후 자신에게 올 상속 가능성이 있다며 밑천을 드러내보는 메리보다, 조용하지만 내면이 단단한 한 패니가 최종 승자라는 것을 보여주려고한 것이 작가 오스틴의 의도가 아닐까.


아보카도처럼 나 또한 내면이 단단하게 살아야겠다. 바이러스같이 악영향을 줄 사람을 꿰뚫어보는 분별력을 키우고 만나더라도 전염되지 않도록 면역체계를 키워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평. 딥워크, 칼 뉴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