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궁금하긴 했지만 공부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을 사실이나 올바름의 기준이 아닌 사람들의 -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낮은 - 지지도를 기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싫어하거나 남성처럼 권위적으로 행동한다는 선입견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정의가 ‘성에 기반한 차별, 억압, 폭력에 반대하며 양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는 사상’이라면, 성별을 불문하고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성도 경제활동을 할 때 남성과 같이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한 기회와 임금을 받아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남성이 100만원 벌 때 여성은 약 68만원밖에 벌지 못한다. 또한 여성도 남성만큼 결정권이 있는 지도자급에 자리매김해야 한다. 현재 한국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약 20%, 여성 임원 비율은 2% 정도다. 남성 입장에서 내 어머니, 누이, 동생, 아내, 애인, 딸이 성폭력 당할 확률이 줄어들고 소득과 권익이 올라 남성과 동등하게 책임을 분담하면 개인과 사회 모두 이익이지 않을까?
귀동냥했던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대부분 ‘유급인 사회 노동과 무급인 가사 노동’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은 남성이 가사 노동하는 가정주부에게 ‘여자인 주제에', ‘집에만 있는 주제에' 라며 무시하지만, 남성이 가사 노동을 하면 아마 그 가치가 올라 드디어 인정받고 존중까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충격적이게도 한 발 더 나아가 “이성애는 여성의 힘을 빼앗는 정치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경제적으로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판매해야 하고 남성은 그러한 편중을 강제할 수 있는 경제적 힘과 지위를 점유”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성 지배적 관점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감정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쓰고 버려도 좋은 소모품이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 모두 “사춘기 동안 성 권력은 남성에게 있다고 학습한다.” 남성 권력의 예시는 명백하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한다 - 음핵 절제, 음부 봉쇄, 정조대, 죽음을 포함한 여성 간음 처벌, 죽음을 포함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 처벌, 정신분석학의 클리토리스 부정, 자위에 대한 구속, 모성과 폐경 후 섹슈얼리티의 부정, 불필요한 자궁 절제, 미디어와 문학 속의 유사 레즈비언 이미지, 레즈비언 존재와 관련한 아카이브의 폐쇄와 자료 파괴 등
여성에게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제한다 - 부부 강간, 아내 폭행, 아버지-딸, 남매 사이 근친 성폭력, 남성의 성적 충동이 쌓이면 일종의 권력이 된다고 느끼게 하는 사회화, 예술, 문학, 미디어, 광고 등 이성애 로맨스 이상화, 아동 혼인, 중매결혼, 성매매, 하렘(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만의 방), 불감증과 질 오르가슴에 대한 교조주의, 성폭력과 성적 수추심에 대해 쾌락으로 반응하는 여성을 묘사하는 포르노(가학적인 이성애가 여성들 사이의 섹슈얼리티보다 더 정상적이라는 메시지) 등
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여성의 노동력을 지휘 또는 착취 - 결혼과 모성을 무급 생산으로 제도화, 유급 노동에서 여성의 수평적 차별, 토큰 여성(구색 맞추기로 지도급 자리에 임명되는 소수의 여성) 지위 향상 유혹, 낙태, 피임, 불임, 출산에 대한 남성의 통제, 성매매 알선, 어머니에게서 딸을 빼앗아가고 여성의 일반적인 가치 하락을 도모하는 여성 영아 살해 등
여성의 아이들을 통제하거나 빼앗는다 - 부권과 합법적 유괴, 강제적 불임, 체계적 영아 살해, 소송을 통해 레즈비언 어머니들에게서 아이 압수, 남성 산부인과 의사의 의료사고, 딸의 결혼을 우한 생식기 절제나 전족 행위에 어머니를 ‘토큰 고문자'로 이용 등
여성을 물리적으로 규제하고 움직임을 금지한다 - 여성을 거리에 나오지 못하게 막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강간하기, 여성의 몸을 장막으로 가리기, 전족, 여성의 체육 능력 위축시키기, 하이힐과 패션계의 ‘여성적인’ 드레스코드, 베일 쓰기, 거리의 성희롱, 직장 내 여성에 대한 수평적 차별, 가정에서 어머니의 ‘전업’ 육아 명령, 아내의 경제적 의존성 강요 등
여성을 남성의 거래 대상으로 이용한다 - 여성을 선물로 이용하기, 신부 구매, 성매매 알선, 중매결혼, 남성끼리의 거래 촉진을 위해 여성을 오락거리로 사용 (예. 아내를 파티 안주인으로 사용, 칵테일 웨이트리스에게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옷 입히기, 콜걸, ‘바니걸', 게이샤, 기생, 비서 등
여성의 창조성을 구속한다 - 조산사와 여성 치료사를 탄압하고 독립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여성을 학살하는 마녀 박해, 어떤 문화권이든 여성보다 남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더 귀하다는 개념을 통해 문화적 가치관을 남성 주관적으로 구현하기, 여성의 자아성취를 결혼과 모성으로 제한하기, 남성 예술가와 남성 교사의 여성 성적 착취, 여성의 창조적 열망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붕괴시킥, 여성 전통의 삭제 등
사회적 지식과 문화의 습득이 관련한 대규모 분야에서 여성을 소외시킨다 - 여성을 교육하지 않기, 여성 특히 레즈비언 존재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으로 ‘거대한 침묵'하기, 과학, 기술, 기타 ‘남성적인' 영역에서 여성을 제외하는 성 역할 편성, 사회적/전문적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한 남성끼리의 유대, 전문직에서 여성 차별 등”
미국 TIME 지에 ‘올해 꼭 읽어야 할 책 100선'에 ‘82년생 김지영'이 선정되었다. 이 책이 공감력이 있다는 것은 여성이, 특히 한국 여성이 성차별을 많이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 “원래 그래", “다들 그래" 라며 침묵하고 참아왔다. 내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런 소설이나 논문같은 이 책을 통해 대리만족해왔다. 여성이 밤에 다니기 위험한 사회에 대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아들을 낳으려는 생각은 해결책이 아니다. 나는 예뻐서 남자들로부터 인기많고 사랑받고 있으니까 지금도 괜찮아 라고 착각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이성애와 성차별이 정치 제도와 매체를 통해 강제되고 학습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노예제도도 절대왕권주의도 결국 폐지된 것은 백인이 아닌 사람이, 왕족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왜 태어날 때부터 억압받아야 하지? 너무 힘들다. 이건 잘못됐다." 라고 내뱉은 공개 발언에서부터 시작됐다. 키가 작은 이유로 차별받는 것만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옳지 않다. 지지받지 못하더라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표현하는 용기와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