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만함
외모 말고 생각의 도플갱어가 있다면 아마 내 도플갱어는 천선란 작가일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소개글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인류는 지능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식물을 착취하기도 부족해 멸종시키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장 고등생물이라며 다른 동식물은 열등하다고 몰살하고 있지만 이런 오만이 얼마나 오래 갈까? 소, 돼지, 닭에게 발생하는 전염병도 공장식 사축방식이 크게 기여했으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도 야생동물과 자연을 침범한 인과응보이다. 인간이 돈에 눈이 멀어 환경을 훼손해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고, 나아가 인간끼리 서로 돕는 마음도 잃어 서로 죽이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천선란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기후위기, 동물과 인간, 인간소외라고 한다. 1) 유난히 춥고 더운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이유는 탄소 등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이다. 2) 동물은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생존의 자유조차 누리고 있지 못한다. 흙이나 풀을 밟지 못하고 공장 시멘트 바닥에서 제 몸 크기에 딱 맞는 칸에 있어 관 속에 들어가있는 듯하고, 그건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한 칸에 여럿이 우겨넣어 옆에 있는 같은 종을 서로 물어 죽이는 경우도 많다. 3) 누구라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장애인이 학교와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돕기는 커녕 집에만 있어라고 눈치를 준다. 나 또한 이 주제 모두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텀블러를 쓰고,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지나가는 장애인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등 소소한 행동 외에 대단한 일은 하고 있지 않기에 이에 대해 글을 쓰는 천선란 작가에게 조용한 지지를 보낸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이 책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작이라 읽었다. 경주마 투데이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로봇 기수 콜리는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보다 나았다. 경주마는 무엇을 위해 달릴까? 인간의 욕망 때문에 달린다. 도박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에 달린다. 경주마는 왜 안락사시켜야할까?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안락사당한다. 너무 빨리 달려서 어린 나이에 관절이 파손돼 경주마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안락사당한다. 본인도 폐기처분될 위기에 있는 안드로이드 기수 콜리는 경주마 투데이를 하루라도 더 살게 하기 위해 투데이를 경마에 내보낸다. 출전해야 안락사 날짜를 하루라도 더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성을 가진 휴머노이드 기수에게 온기가 느껴진다.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투데이와 함께 달릴 때 호흡을 맞추고 투데이의 심장 박동과 감정을 느낀다. 사람들끼리 대화도 적고 대화를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은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 장치다. 작가는 “우리는 대화를 하지만, 어떤 호흡으로 대화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많은 교감을 주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교할 적대적 관계가 생길 때 소통의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으니까요.”
“빨리빨리"는 한국인이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빨리 달리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걸까?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천 부평에 살면서 GM자동차 직원들이 10년 가까이 농성하는 장면을 봐 왔어요. 속도를 중요시하는 자동차를 만들면서 기술도 기계도 발전했을 텐데, 그 바깥에 생존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보며 ‘누구를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는가’하는 의문이 적지 않았거든요.”
모두의 파란 하늘
작가는 모두의 삶이 파란 하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모든 것의 행복, 즉 ‘천 개의 파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갇혀사는 동물도 행복할 수 있을까? 맹목적으로 돈을 쫒는 인간도 행복할 수 있을까? 뇌출혈 이후 합병증으로 치매가 온 작가의 어머니도 그 가족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작가의 어머니는 딸의 이름, 생일도 잊어버려도 “엄마 내가 누구지?” 라는 질문에 “작가"라고 할 정도로 딸의 꿈은 기억했다고 한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부여한 존재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파란 하늘일 것이다. 나의 하늘은 파랑일까? 당신의 하늘은 푸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