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자존심이 상한다면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을 수 있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되돌아보면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결정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왜곡됐을 수도 있지만 그 때보다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인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그런 사람이었다. 그건 그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직업은 이럴줄 알았는데 막상 일하고 보니 그런 직업이었다. 역시 밖에서는 대단해보였는데 안에서는 별로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몰랐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인간의 뇌
인간이 신을 만들었지 신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인류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러 유물 및 유적을 증거로 몇십만 년 동안 진화한 것이다. 직립보행하는 인간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면 인간의 척추는 X자 모양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척추가 하나인 네 발 동물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I자 모양의 척추를 그대로 이어받고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여러 뇌과학자, 심리학자, 행태경제학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심리 오류(클루지)를 범한다. 왜냐하면 뇌 역시 진화했기 때문이다. 뇌는 뒷부분에 해당하는 반사체계 reflective system 그리고 앞부분에 해당하는 숙고체계 deliberative system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자동반사신경이 뛰어난 동물의 뇌로부터 추론, 창조하는 영역이 진화해 발달했다. 뇌 뒷부분에 있는 편도체 amygdala는 주로 본능, 감정과 연관되어 있으며, 뇌 앞부분에 있는 전전두피질 prefrontal cortex은 주로 이성, 사고를 담당한다. 인간의 뇌가 처음부터 뇌 앞부분만 있다면 주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했겠지만 뇌 앞부분은 뒷부분에서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직도 뇌 뒷부분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특히 뇌 앞부분이 덜 발달해 지능이 낮을수록 본능과 감정에 휘둘린다고 한다.
클루지
심리학은 인간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수백 개의 이름을 붙여왔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한 부분, 특히 외모가 좋으면 모든 것이, 예컨데 성격까지 좋다고 생각하고(후광효과), 높다-낮다 춥다-덥다 빠르다-느리다는 각각 설정한 기준에 따라 상대적이고(기점 및 조종 효과), 상대방을 자꾸 보면 정이 든다(노출효과).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오류이자 우리가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는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그리고 동기기반추론 motivated reasoning 이다. 이 둘은 쉽게 말하면 ‘답정너'이다. 인간은 자신의 직간접 경험에 근거해 이미 확립한 세계관이 있다. 종교, 정치는 물론 성별, 인종에 대해 구축한 관점이 있다. 사람들은 빠른 판단을 해야 할 때 시간이 적고 정보도 적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편의상' 자신의 관점을 고수한다. 관점에 따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확증편향)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거나 의심하거나 배제한다(동기기반추론). 예를 들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잘하는 정책도 있고 못하는 정책도 있지만 잘하는 정책만 골라 보거나 그런 기사만 골라 보고(확증편향), 담배가 폐암 발암물질이다라는 연구결과가 나오더라도 흡연자는 이를 의심하거나 심지어 무시하는 경향이 비흡연자보다 높다(동기기반추론).
내 기억, 생각, 선택에는 모두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내 기억은 내가 부여한 의미의 크기에 따라 시간, 장소, 실제 사건 모두 왜곡됐을 것이다. 내 생각 역시 내가 경험한 것에 바탕하기 때문에 타인의 관점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내린 선택 역시 시간이나 정보,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이 부족해 잘못됐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즉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모든 개선의 출발점이다. 작가는 시간이 촉박해 서두르는 상황, 스트레스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는 뇌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작동하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을 내리지 말 것을 권유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건강한 음식을 고르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이나 단 것을 먹는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동시에 건초와 물 사이에서 어느 선택을 해야할지 몰라서 미루다가 죽어버린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처럼 되지 않을 것도 지적했다. 선택은 해야 한다. 단, 대안은 없는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가 아닌지, 충동적인 선택은 아닌지, 이익과 비용을 함께 평가했는지, 합리적인 선택인지, 나 자신과 거리를 둔 객관적인 선택을 해보자. 뇌 뒷부분이 아니라 앞부분을 활성화해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