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이루어질꺼니까 이룬

by 카멜레온

공항을 벗어나면서부터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시로 내가 가는 길이 맞냐고 물었다. 지하철이 이쪽 방향 맞나요? 이 시간에 지금 지하철 운행 시작한거 맞나요? 지하철 기계 이렇게 사용하는 거 맞아요? 기차역은 이 플랫폼이 맞아요? 기차역 여기서 내리는 거 맞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그 당시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모든 것이 불안했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원하는대로 이루어질꺼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스페인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게 답해줬다.

- 이 기차 이룬 가는거 맞죠?

- 맞아요.

기차 옆 자리에 앉은 마리아는 깔끔한 수트를 입은 비즈니스 우먼이다. 오스트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남편이 마리아를 따라 영국, 스페인을 이사다녔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아내를 따라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설득이라는 과정 없이 쉽게 이사다녔다고 한다. 이 것 봐. 남편이 아내 따라 이사할 수 있잖아. 결혼하면서 남편 근무지로, 서울을 떠난 친구들이 생각났다. 한 명은 포항으로 갔다. 한 명은 부산에 있다. 지방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그리고 둘 다 아이를 낳으면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싱가폴로 일자리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남편이 함께 갈 의향이 없었고,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았기에 제안을 거절했다. 이 친구들과 다른 선택을 한 마리아가 멋져 보였다. 남편 따라 아내가 이사한 경우는 봤지만 아내 따라 이사한 남편은 보지 못했다. 그래, 남편도 아내 따라 이사할 수 있어. 편견을 버려야 한다. 정말 멋진 여성이다. 얼마나 커리어가 탄탄하길래 남편이 자발적으로 따라간다고 했을까. 마리아는 독일에서 일할 때 지금 오스트리아 남편을 만났다. 그래서 마리아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언어인 스페인어, 아버지 언어인 독일어, 영국에서 살면서 영어, 즉 3개 국어를 할 줄 안다.

왜 나는 해외 취업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해외 취업한 지인이 있긴 했다. UAE에서 통역 일하는 사람, 프랑스에서 홍보 일하는 사람, 중국에서 금융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SNS를 통해서 소식만 전해듣는 지인같은 친구라 그런지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외 취업은 커녕 해외 입학도 생각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학교를 졸업해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을 한국에서 만난 적은 있어도 한국에 있다가 유학간 사람은 주위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너무 익숙한 서울에서 익숙한 사람들만 만났구나. 마리아를 보면서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할 수 있구나. 해외에서 남편을 만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구나, 알게 된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마리아가 먼저 내리고 나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마드리드 역에서 산 세바스티안 역까지는 큰 기차로, 산 세바스티안 역에서 이룬 역까지는 지하철처럼 작은 기차로 환승해야 했다. 더운 날씨인줄 알았는데 비가 와서 쌀쌀했다.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작은 기차에 함께 탔다. 둘 다 큰 배낭을 맨 것을 봤을 때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것같았다. 알베르게 방향을 묻자 둘 다 그 곳을 간다고 했다. 둘은 구글 지도를 켜고 부슬비를 맞으며 걸어나갔고 나도 따라갔다. 이 둘은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으로 대학교를 갓 졸업했다. 까미노 전 구간을 가는 건 아니고 입사하기 전에 약 보름 동안 북쪽길 일부 구간만 간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휴가 때 다음 구간을 걸을 예정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나처럼 직장을 그만 두고, 한 달을 시간 내고, 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바퀴를 큰 마음 먹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이 학생들처럼 휴가로 보름 동안, 기차 몇 시간만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가 넓은 세상으로 생각하는 이 곳을 자기 앞마당, 뒷마당으로 쉽게 오가는 게 부러웠다. 나한테는 큰 도전이 타인에게는 쉬운 일상이었다.

두 학생들 덕분에 알베르게를 쉽게 찾았다. 나 혼자였으면 헤맸을텐데 두 명이 있어 다행이었다. 첫 알베르게에 오후 2시 30분쯤 도착했다. 바로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오후 4시에 연다고 한다. 앞마당 벤치에 다른 순례자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 남자, 스웨덴 남자, 프랑스 여자였다. 다 백인이었는데 프랑스 여자와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영어로 말을 걸었다.

- 순례자세요?

- 위(oui). 아니 네(yes). 제가 프랑스어를 쓰다 보니 프랑스어가 튀어나오네요.

실비아도 3개 국어를 할 줄 안다.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대학교를 마치고 프랑스 레옹에서 석사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레옹으로 이사했다. 주변에 프랑스로 그렇게 유학가고 취업하는 사람이 있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주변에 해외로 간 사람이 없어서 나도 그러지 않았다는 내 핑계가 무색해졌다. 2년 석사를 마치고 레옹에서 일하다가 최근 퇴사했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부모님이 자꾸 귀국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실비아가 레옹에 남아있는 이유는 프랑스 남자친구 때문이다. 1년 넘게 동거를 하고 있고, 계속 레옹에 살고 싶은데 남자친구와 부모님 사이에서 갈등 중이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까미노를 걸은 적이 있고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까미노를 추천했다고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 상황 자체가 놀랍다. 나는 지구 반바퀴 돌아 여행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근데 실비아는 지구 반바퀴 돌아 공부하고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게다가 현지인 남자친구도 있고 동거도 한다.

- 프랑스 가기 전에 프랑스어를 알았어요?

- 농(non). 프랑스 가서 배웠어요. 남자친구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완벽한 혹은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날 필요는 없다. 가서 배울 수도 있고, 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현지인과 연애도 동거도 할 수 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오는걸까. 실비아는 체구가 작았지만 단단해보였다.

- 어떻게 상하이에서 레옹으로 갈 생각을 했어요?

- 정해진 틀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도 그래. 나도 벗어나고 싶어. 그런데 실비아는 행동하는 반면 나는 생각에서 그친다. 행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어떤 차이 때문일까? 실비아는 석사를 호주나 캐나다로 가고 싶었지만 합격을 못했고, 마침 프랑스는 합격했을 뿐더러 무료였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이 쉬웠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남자친구가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혼자 살아본 적도 없고 외국인을 사귀어본 적도 없었기에 실비아가 멋져 보였다. 미지의 세계를 상상할 때 누구에게나 두려움과 설레임이 함께 일어난다. 실비아는 설레임이 더 컸고, 나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실비아는 행동했고 나는 행동하지 않았다. 관점의 차이였다.

알베르게 체크인을 했다. 순례자 여권을 받았다. 순례자의 상징인 크고 하얀 가리비 껍데기도 받았다. 껍데기에 작은 구멍이 있었고 실로 배낭 고리에 묶었다. 내 배낭은 그냥 배낭이 아니라 이제 순례자의 배낭이다. 내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라 이제 순례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알베르게마다 고유한 도장을 순례자 여권에 찍어준다. 유치원에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듯이 걷느라 수고했어요 하는 듯한 도장을 여권에 한 칸씩 채워나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1층에는 사무실과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숙소와 화장실이 있다. 한 방에는 남녀 16명이 2층 침대를 사용한다. 선착순으로 침대를 고르는데 난 1층 침대를 골랐다. 알베르게에서 일회용 침대 및 베개 커버를 제공하지만 그래도 위생적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순례자는 경량 침낭을 갖고 온다. 나는 짐 무게를 줄이느라 또 날씨가 더울까봐 침낭을 갖고오지 않고 얇은 플라스틱 식탁 커버를 침대 커버 삼아 들고 왔다. 이 식탁 커버 또한 내가 가장 잘 갖고 온 물건에 손꼽는다. 침낭이 아무리 경량이라도 얇은 식탁 커버보다는 무겁다. 가볍고, 질기고, 펼치고 접기도 쉬웠다.

프랑스 여자는 무엇을 먹을까. 소식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여자답게 실비아도 소식하는지 궁금했다. 둘은 마트에 갔다가 동네도 구경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마트에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을 구경했다. 실비아가 사는 것을 나도 그대로 따라했다. 바게트빵, 치즈, 샐러드, 아보카도와 요거트. 한국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 양을 한 번에 다 먹지만 실비아는 그게 두 끼다. 부슬비가 내려 동네 구경은 오래하지 못하고 알베르게 공용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도 나름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허기가 졌다. 다행히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과일과 빵이 있었다. 음식이 없는 알베르게도 있다고 하니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프랑스 여자는 어떤 말을 할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프랑스 여자답게 실비아도 그러는지 궁금했다. 중국도 한국도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다. 반면 프랑스는 개인이 우선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전공을 선택하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결혼할 때나, 양육할 때나 가족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그렇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고 자식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대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실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교수였고 딸도 교수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비아는 그렇게 미리 정해진 삶이 싫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가장 놀란 건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점이라고 한다. 프랑스 부모는 아이를 아이가 아닌 곧 어른이 될 사람으로 존중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명령을 말대꾸 없이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본인의 생각을 묻고, 스스로 선택하게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연습을 시킨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의 보호 및 간섭을 더 이상 받지 않고 독립해서 개인의 삶을 형성한다. 커리어와 사생활 두 영역 모두 각자의 자유를 존중한다. 기혼자 대부분이 동거 기간을 거쳤고,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거자의 권리가 보호되어 선입견이나 차별이 없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여럿 있는 경우도 일상적이며, 양육에 대한 책임은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남녀에게 동등해 여자에게 더 많은 부담이 지워지는 건 아니라고 한다. 실비아도 파트너와 함께 살고 아이도 낳고 싶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결혼한 후에서야 동거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생활 습관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보다 동거를 제도적이나 문화적으로 인정하는 게 개인의 행복은 물론 나아가 사회의 행복에도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실비아가 상하이로 돌아가지 않고 레옹에 남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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