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을 잘 모르면, 특히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와 속도를 모르면 몸이 정말 많이 아프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전까지만해도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출발했다. 조금 걷다 보니 일출이 보였다. 노랗게 오르는 태양을 보며 내 마음도 차올랐다. 일출은 어느 도시에서 보든 희망적이다. 한국에 있는 한 친구는 북쪽길이 프랑스길에 비해 사람이 없어 고독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는 “밀라노 청년과 바다 보며 대화하고 있어서 고독할 틈이 없어.” 라고 허세를 부리려고 했지만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도 빨리 걷는 피에르는 루이라는 중국계 스페인 사람과 함께 저 앞에 가고 있었다. 오늘은 피에르와 거의 대화하지 못하고 나 혼자 천천히 걷고 있었다.
혼자 생각에 빠지니 걱정되고 후회되는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여행이 끝나면 어떤 회사를 가게 될까, 어떤 회사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 모임을 계속 다닐까, 다른 모임을 나갈까,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그게 나랑 맞을까, 그 회사를 가지 않았더라면, 그 회사를 갔었더라면,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할껄, 그 사람에게 그 말을 하지 않을 걸 그랬나, 그 전공을 했었더라면, 그 전공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전공을 일찍 했다면, 그 시험에 합격했더라면, 그 시험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곳에 살았더라면, 그 곳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러다 스페인 마누엘 아저씨를 만났다.
- 아저씨는 가장 후회되는 게 뭐예요?
- 없어.
- 없다구요? 그럼 가장 걱정되는 건요?
- 그 것도 없어.
- 없다구요? 왜죠?
- 모르니까.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모르잖아. 그게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어. 지금 어떤 선택을 하면 그 결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좋은 일일 수도 나쁜 일일 수도 있어. 어쨌든 모르잖아.
몰라도 후회하고 걱정할 수 있잖아. 아니 모르니까 후회하고 걱정하는 거잖아.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지금 삶이 절대 더 나빠질리 없고 반드시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내가 착각하는건가.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걱정하는 것도 소용없는걸까.
나는 마누엘 아저씨 답이 시원찮아 이 질문을 몇 주 후 까미노에서 만난 나이 있는 몇 분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몇 주 후 브라질에서 온 세르지오 아저씨에게 물었다.
- 아저씨는 가장 후회되는 게 뭐예요?
- 사랑에 빠지지 않은 것.
세르지오 아저씨는 금융권에 꽤 오랫동안 일했다. 경제적으로 꽤 여유 있어 보였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사랑에 빠진 적이 없었고 그래서 결혼한 적도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이유가 쉽게 짐작이 갔다. 결혼하기에 앞서 사랑하기에 앞서 대화가 돼야 한다. 하지만 세르지오 아저씨는 부끄러움이 많거나 숨기는 게 많아 보였다. 나는 그런 부류를 잘 안다. 내가 그 부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질문하면 애매하게 답하고 그 질문을 상대방에게 되묻거나 주제를 바꾼다. 상대방은 곧 눈치챈다. 그리고 더 이상 대화의 진전은 어렵다. 세르지오 아저씨가 그런 부류였다.
몇 주 후 미국에서 온 그레이스 아주머니를 만났다.
- 아주머니는 가장 후회되는 게 뭐예요?
- 빨리 이혼하지 않은 것.
그레이스 아주머니 역시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었고,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서 거의 가보지 않은 국가가 없는 것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너무 빨리 했다고 한다. 처음 좋아하는 사람이랑 “육체적으로 너무 잘 맞아서” 결혼했는데 막상 결혼해보니 육체적인 것 외에 너무 달랐다. 결혼하기 전에는 맞춰주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결혼한 후에는 본성이 드러났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부모님도 이혼에 반대였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고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노골적이고 암시적인 압박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게다가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고, 하나 둘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 나도 그래야 하는 건가 하지 않는 게 비정상적인 건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사회로부터, 부모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압박을 받으면 내 스스로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그레이스 아주머니 역시 그랬다고 한다. 한참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이혼을 했다. 몇 년 동안 부모가 자신을 만나길 거부했다고 했다. 이혼한 걸 후회한 적은 없냐고 물었다. 단 1초도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더 빨리 이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또 몇 주 후 만난 우크라이나에서 온 율리아 할머니가 있다.
- 할머니는 가장 후회되는 게 뭐예요?
- 없어.
마누엘 아저씨와 같은 답이다. 왜 없냐고 물어봤다. 실수하고 실패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많다고 했다. 그럼 그 실수와 실패를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실수와 실패를 했으니까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했다.
율리아 할머니는 피터 할아버지와 부부다. 둘이 서로 만나기 전에 각각 결혼한 적이 있었다. 각각 이혼하고 나서 둘은 서로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를 만난 후 사랑에 빠졌고 결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럼 처음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혼한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피터 할아버지를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쉽지 않는지 물었다. 율리아 할머니는 후회하지도, 아쉽지도 않다고 했다. 첫 번째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야 서로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어 이혼했다고 했다. 근데 그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거라고 했다. 그 당시에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했고, 그 당시에 행복하기 위해서 이혼했다고 했다. 두 결정 모두 행복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혼을 했으니까 지금 피터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하나의 결정이 다른 결정들과 다 이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 결정들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결정을 했으니까 지금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마누엘 아저씨랑 결론은 같지만 이유가 달랐다. 한 순간의 좋은 결정이 다음 순간에는 나쁜 결정이 될 수도 있다. 근데 그렇다고 과거에 내렸던 좋은 결정이 애초에 나쁜 결정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거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히 좋은 결정도, 나쁜 결정도 없다. 어쩌면 애초에 좋은 결정도, 나쁜 결정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단지 그 순간에는 그 결정이 최선이었고, 다음 순간에는 더 이상 최선이 아닌 결정이 되는 거다. 그러면 과거 결정을 후회할 것이 아니라 다음 결정을 잘 하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세르지오 아저씨, 그레이스 아주머니, 율리아 아주머니를 만나기 전, 마누엘 아저씨만 만났던 당시, 걷는 거리가 30km쯤 넘어서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음 한 호흡, 다음 한 걸음만 보이고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무릎이 후들거린다. 어깨가 결린다. 내가 걸을 수 있는 거리와 속도를 몰랐기 때문에 동행하는 까미노 아미고들을 계속 따라갔다. 피에르를 비롯해 국적도 다양하고 나이도 다양했는데 나 혼자 여성이었다. 나 혼자 쳐질 수는 없어서 열심히 걸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화를 하면서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뿐이었다. 무리해서 걸으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내 발과 무릎, 어깨를 느낄 수 없고 마치 남의 몸처럼 느껴진다.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끝까지 가게 해주세요, 기도하면서 걸었다.
몸이 아플 것이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속도를 낮추고 거리를 줄였을 것이다. 왜 나는 동행하려 했을까.
1. 밀라노 청년이 잘생겼는데 생각까지 깊어서 계속 얘기 하고 싶어서
2. 혼자 가면 노랑색 화살표를 놓치고 길을 잃을까봐 무서워서
3. 다 같이 걷다가 나 혼자 포기하면 자존심 상하니까 오기가 생겨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다. 북쪽길을 걷는 사람 중 (피에르만큼 잘생긴 사람은 결국 이후에도 보지 못했지만) 속 깊은 사람은 많았다. 노랑색 화살표는 누구나 놓치며, 놓친다고 하더라도 다른 까미노 아미고가 방향을 다시 알려주거나, 마을 사람이 알려주거나, 스스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여러 명이 같이 걷다가 누가 없어져도 사실 모른다. 빨리 앞에 갔겠거니 혹은 쉬다가 뒤에 오겠거니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는다. 자기 몸을 소중히 하면서 자기 삶을 회고하고 정리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자기 속도에 맞추지 않고 남을 따라가는게 오히려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하지만 까미노를 시작한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나는, 내 걷는 속도가 느려서 누가 날 앞지르는 것은 마치 내가 그 사람에게 지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지는 느낌은 싫었다.
드디어 한 알베르게에 도착했지만 침대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 니키, 우리는 괜찮은데 너 피곤하면 여기서 숙박할래?
- 그럼 다른 분들은요?
- 여기서 택시 한 5분 타고 5km 가면 알베르게 하나 더 있데.
나를 배려하는 건지 버리려는 건지 몰랐지만 같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혼자 남는 것도 두려웠고, 게다가 5km면 1시간 넘는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까미노는 전 구간을 걸어야 하는건데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12시간 동안 내 체력에 맞는 휴식 시간 없이 40km를 걸은 나는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여성 전용 20인실 2층 침대에 기어 올라가 말 그대로 쓰러졌다. 옷을 갈아입을 힘도, 샤워할 힘도 없어서 땀범벅이 된 등산복 그대로 입고 누웠다. 공동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가 있다고 들었지만 앉아서 밥 먹을 힘도 없었다. 이 체력 좋은 남자들은 점심을 에스프레소 한 잔, 크로와상 하나만 먹었다. 그 정도 양은 나에게는 굶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먹지 않고 자면 내일 깨어나지 못할 것같아 옆으로 쭈그려 누워서 갖고 있던 빵을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입에 쑤셔넣었다. 침대 벼룩 걱정하며 매트리스를 덮을 식탁 커버도 꺼낼 힘이 없었다. 그대로 기절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