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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Sep 23. 2022

[산티아고 순례길] 아르주아 25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일이면 산티아고 입성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끝이다. 매일,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내일 장렬하게 전사할 것이다. 누구는 산티아고로 가면 막상 아쉬울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질려버릴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여생을 다시 걷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포르투갈로 바로 떠나고 싶을 정도로 걸었다. 하지만 피스테라, 묵시아에 가지 않으면 지금은 미련이 없어도 나중에도 그럴까? 

어제 숙박한 곳은 12인실 벙커가 있는 작은 알베르게였다. 외진 곳이었는데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탈리아 여성 한 명이 이미 와있었고 나까지 두 명이라 약간 무서웠다. 나중에 두 명이 더 와서 넷이 작은 알베르게를 채웠다. 

숲 속 아침 산책이 즐거웠다.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하고, 홀가분하다. 깨어있다는 기분이 든다. 

몇 시간 동안 숲길이 이어졌다. 알록달록한 간판이 있는 가죽 공방이 나타났다. 공방에는 주인이 가죽으로 만든 수공예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이 있었다. 공방을 나와 계속 숲길을 걸었다.

- 니키!

- 도로시 아주머니! 아주머니 걸음이 빠르시네요.

- 폴란드 산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산을 잘 타. 하하하.

- 체코는 가봤는데 폴란드까지 더 올라가볼껄 그랬네요. 하하하.

- 한국이랑 폴란드랑 참 비슷해.

- 어떤 점이요?

- 주변 강대국한테 침략당한 역사가...

도로시 아주머니는 역사학자인데 역사가 재밌다고 했다. 폴란드인과 한국인이 스페인에서 각자 역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재밌었다. 나는 정말 폴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게 거의 없었다. 그러다 도로시 아주머니와도 곧 헤어졌다.

- 안녕. 너는 어디서 왔니?

- 한국이요. 아주머니는요?

- 핀란드. 

- 핀란드는 아직 못가본 나라예요!

- 그래? 혹시 너 무민 아니?

- 아 그 하마요?

- 어머 얘, 무민은 하마가 아니야! 트롤이야!

나는 핀란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유럽 또는 북미 국적이었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국적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그들이 사는 곳, 그들이 여행했던 곳으로 여행하고 싶어졌다. 단, 한참 나중에. 까미노 여운이 사라질 아주 나중에.

아르주아에 도착했다. 도시에 들어서는데 마사지샵이 유난히 많았다. 한 달 간 쌓인 여독을 풀려면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대형 난민촌이다. 40명은 수용할 듯한 방이었는데 그런 방이 몇 개 더 있었다. 샤워를 하고 동네를 구경할까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 라레도에서 수녀님들의 노래와 악기 연주가 떠올랐다. 미사가 끝날 무렵, 옆 사람들과 악수하고 인사하는 순서가 있다. 몸을 돌리는 순간 몇 줄 앞에 누군가 보였다.

- 네이썬! 인디!

- 니키!

- 너네 언제 여기 도착했어?

- 오늘 왔어. 산타크루즈 베자나에서 만난 북쪽길 일행이랑 같이 다녔어?

- 아니. 나는 프리미모티보 길을 걸었는데 거의 못봤어. 

- 그랬구나. 우리는 계속 북쪽길 걸었어.

미사가 끝나고 네이썬, 인디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 북쪽길 후반은 어땠어?

- 전반이랑 비슷했어. 바다가 있었지. 근데 내륙으로 들어오는 지난 몇 일 동안은 볼 수 없었어. 프리모티보길은 어땠어?

- 북쪽길보다 어려웠어. 산길, 숲길이라서. 근데 예뻤어.

애피타이저로 샐러드, 메인으로 생선구이, 디저트로 산티아고 케이크를 먹었다. 물론 와인도 마셨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진짜 산티아고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기분이 어떨까? 산티아고 도착하기 전과 후의 내가 무엇이 달라졌을까? 남들이 그랬던 것처럼 펑펑 울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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