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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Oct 04. 2022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 30

묵시아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첫 버스를 탔다. 집밥 문어 별미로 여행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어서 마음 후련하게 스페인을 떠날 수 있다. 피스테라를 가지 않고 묵시아에서 며 칠 있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함께 추억을 만들 사람은 하늘에 맡겨야 하고, 바다 풍경에 관한 한 개인적으로 큰 절벽이 있는 피스테라가 아담한 해변이 있는 묵시아보다 더 좋았다. 하루씩 경험해보는 게 적당한 것같다. 개인의 취향은 상상하는 게 아니라 해봐야 아는 거니까.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했다. 비행기 옆좌석에 누가 앉느냐보다 버스 옆좌석에 누가 앉느냐가 더 중요한 것같다. 영화로 피할 수도 없으니까. 운이 좋게도 대화가 잘 통하는 제나 아주머니를 만나 가는 4시간 내내 수다를 떨었다. 제나 아주머니는 여행 초반에 알베르게에서 만난 영국 출신 노부부처럼 남아공에 산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작년에 엄마쪽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나도 엄마 생각이 났다.

- 엄마랑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시간은 가고 있으니까 엄마랑 좋은 추억을 만들어.

- 엄마랑 뭘 같이 해요?

- 엄마한테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되지. 근데 대단한 게 필요한 게 아니야. 대화하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게 중요하지. 엄마가 살아계시니까 마치 영원히 함께할 것같지만 아니야.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시간이야.

아빠랑은 산으로 여행하면서 오래 대화한 적이 있는데 엄마랑은 따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제나 아주머니는 프랑스길을 걸었다고 했다. 하지만 편하게 걷고 싶어서 짐을 다음 알베르게에 항상 보냈고, 알베르게도 거의 호텔급이었던 패키지 여행이었다고 했다. 역시 여행의 방식은 다양하다. 

- 니키야, 너랑 대화해보니 너는 너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같아. 근데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 

- 자신을 사랑하는 게 힘든 것같아요.

-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사랑해야 해. 

- 순서가 그렇게 돼요?

- 그렇지. 너는 타인에게 사랑받음으로써 너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같은데 그게 아니야. 반대로야. 너가 타인을 사랑해줌으로써 너도 사랑받는거야. 우리는 결국 타인을 사랑하는 게 인생의 목적 아니겠니? 순서야 어쨌든 선순환하는거니까 어디에서든 시작해야 해.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랑하기 힘들면 일단 타인을 도와줘봐. 꼭 봉사활동이 아니더라도 친절하거나, 공감해주거나, 칭찬해줄 수는 있잖아. 남을 도우면 신기하게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되더라.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거든.

어느새 포르투 시내에 도착했다. 이런 대도시는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사람들은 일상복에 가벼운 가방을 들었는데 나는 등산복에 큰 배낭에 등산스틱까지 들고다녀 눈에 도드라져 보였나보다.

- 순례길 걸으셨나봐요?

- 네.

- 멋지네요! 그 긴 거리를!

몇 가지 사항만 유념하면  막상 별 거 아니라는 생각과, 하지만 처음에는 그걸 모르기 때문에 힘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과, 하지만 결국 다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연이어 스쳤다.

화사한 날씨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연계된 워킹투어가 있어 합류하기로 했다. 투어 가이드가 유명한 관광지를 데려가며 설명해줬다. 동 루이스 다리, 예약하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서점, 공원, 성당, 박물관, 강이 내려다보이는 포토존, 유대인거리, 유서 깊은 와이너리 등 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투어가 끝나고 나를 포함해 여자 셋이 투어 가이드에게 와인집을 추천받으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골목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손수 데려다줬다. 그 곳에서 넷이 와인을 마셨다. 가격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0이 하나 빠진 것같았다.

터키 출신 셀리나는 이탈리아에서 일하고 있었고, 프랑스 출신 카밀은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만 태어난 국가에서 일하는 촌스러운 사람같았다.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해외 취업을 해볼까?

- 같이 연극보러 갈래?

동 루이스 다리 너머 해가 지고 있었다. 셀리나가 언덕 위에서 하는 페스티벌 안내를 봤다며 연극이 재밌어 보인다며 같이 가겠냐고 했다. 언덕 공원에 앉아 노을을 구경하다 야외 연극을 봤는데 무성으로 연기를 해서 언어는 문제되지 않았다. 근데 언어가 문제가 아니었다. 연극에서 한 남자는 무엇을 바라고, 꿈꾸고, 기다렸는데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떠났다. 연극이 정확히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원하는 바가 허망하다는 것인지,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노력하라는 것인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부조리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간다”가 주제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연극이 이해되지 않아도 나는 연극을 봤다. 인생이 뒤바뀔지 모르겠지만 나는 까미노를 걸었다. 물론 이해하면 좋고, 달성하면 좋겠지만 목적과 성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내가 연극을 본다는 것과 까미노를 걷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항상 목적, 성과 중심적으로 살았었다. 항상 쓸모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이다.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겠다.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오면 만나고 가면 헤어지기도 하면서 가볍게 지내도 괜찮을 것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니 더 잘할 수 있었다. 잘 걷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니 더 잘 걸을 수 있었다. 지금 이대로 내 삶이 좋다. 이루지 못해도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보고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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