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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온 Oct 07. 2022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 31

계획 없는 여행의 특징은 누굴 만나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어제 만난 셀리나와 점심을 먹고 해변에서 쉬자는 약속을 했다. 까미노 때처럼 이른 아침 아닌 늦은 아침에 일어나 이른 점심 때쯤 만나 포르투를 대표하는 에그타르트 나타(nata) 전문점에 가서 나타와 커피를 먹었다. 그리고 해변을 향했다. 수다를 떨며 강가를 걸어가다가 바에 들려 포르투 와인을 마셨다. 이탈리아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셀리나는 언젠가 동화책 그림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 니키야, 너는 언제 아이디어가 떠올라?

- 나는 새로운 곳에 갔을 때. 새로운 것을 봤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나랑 관점이 다른 게 정말 신기해.

- 나는 혼자 있을 때 영감이 떠오르더라.

-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아?

-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 오히려 즐거워. 예술이 있잖아. 사람들이 있어도 음악과 춤, 미술이 없는 삶을 얼마나 삭막할까! 난 남자친구가 없어도 괜찮아. 나 혼자 온전하니까 남자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 다들 반쪽을 찾아라고 하잖아. 자신보다 나은 반쪽을 원하잖아.

- 사람은 반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한 것같아. 0.5랑 0.5가 만나서 1이 되는게 아니라 1과 1이 만나서 3이 될 수도 있지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어. 옆에 커플 보이지? 옛날에는 저런 커플들이 부러웠는데 이제 봐도 부럽지 않아. 지금 나는 행복하니까. 하하하.

- 부모님 보면서 결혼하고 싶지 않아?

-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부모는 아니었던 것같아. 상담을 받았었는데 미워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이해해. 그들도 부모 역할은 처음이었잖아. 제대로 부모 노릇은 못했지만 어쨌든 그들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거잖아. 배경을 이해하면 미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으니까 내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더라. 하하하.

셀리나와 나는 해변에서 발목까지만 담그고 놀다가 모래에서 쉬었다. 셀리나는 여러 엽서에 그림을 그렸고 나는 작은 공책에 글을 썼다. 

- 나는 포르투를 더 둘러보고 싶어서 먼저 가볼게.

- 응 나는 그림을 더 그릴게. 여행 즐겁게 잘 하구.

- 너도! 안녕!

둘이면 귀찮아서 혼자가 되고 싶고, 혼자면 외로워서 둘이 있고 싶은 변덕스러움 대신 혼자든 둘이든 그 순간을 만끽해보자고 했다. 마침 배가 고팠다. 마침 투어할 때 추천받은 포르투를 대표하는 프랑세지냐 맛집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 큰 맛집에 아무도 없었다. 

- 여기 프랑세지냐 하나 주세요.

마침 손님도 없으니 눈치보지 않고 프랑세지냐를 오래 음미할 수 있었다. 프랑세지냐는 매우 두꺼운 샌드위치다. 위 아래 빵이 있고 그 사이에 스테이크, 여러 종류의 햄, 소세지, 계란, 치즈가 듬뿍 있고, 그 위에 프랑세지냐 소스가 촤르르르 뿌려져있었다. 그 큰 접시를 가득 채운 프랑세지냐를 칼로 썰어 한 입씩 느끼면서 먹었다. 적게 먹는 편이 아닌데 그걸 먹고 배가 불렀다. 하나에 2,000 칼로리라고 한다.

저녁에는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난 중국인 진희 언니와 놀러다니기로 했다.

무려 돈을 내고 줄서서 입장해야 하는 포르투에서 유명한 렐루 서점을 갔다. 롤링 작가가 해리포터 영감을 받았다는 소문대로 마법이 일어날 것같은 서점이었다. 서점 선단과 기둥, 계단 등 모두 나무로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있었다. 서점 중간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빨간 계단이 있는데 중간에 계단은 두 갈래로 나눠지고 하나로 모아졌다가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지는 이색적인 계단이었다. 책을 사는 사람보다 렐루 서점을 구경하는 관광객이 더 많아보였다.

포르투 길가를 걷다가 다시 동 루이스 다리 근처에서 와인바를 가기로 했다.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화이트 와인 잔에 담긴 석양, 동 루이스다리가 함께 나온 사진은 아무렇게 찍어도 작품이었다. 

- 같이 공연 보러 갈래?

연극이든 공연이든 나 혼자였으면 못했을 경험을 다른 여행객 덕분에 하게 되는 것도 마음을 열었을 때 찾아오는 행운이다. 야외 공연장으로 갔다. 어느 가수와 기타, 드럼, 키보드 연주가들이 포르투갈 노래와 춤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핍됐던 예술 감성이 어제와 오늘 충전되는 듯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 와서 또 수다를 떨었다. 

- 나는 매년 생일 때 혼자 여행을 떠나.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올해 생일 주간은 너를 만나서 기뻤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을 살지 말고 너를 기쁘게 하는 네 인생을 살기 바래. 머리로 생각만 하지 말고 몸으로 느껴봐! 여행하다가 누가 마음에 들면 함께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담 없이 거절하고!

- 진희 언니, 고마워요. 생일 미리 축하해요! 상하이 갈 때 연락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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