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경제의 속살 3, 이완배

by 카멜레온

성공의 비밀이 무엇일까? 일단 비밀, 비결, 비법은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마케팅 단어로 비밀이랄 것도 없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목표를 세워서, 웃어서 성공했을 수도 있지만 재산을 상속 받아서,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우연히 시대적 흐름과 맞아서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성공 사례만 연구하는 쓸모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생존자 편향의 오류 survivorship bias라고 한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투기가 많이 격추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 분석을 했다. 돌아온 전투기는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탄이 많길래 보호막을 덧대는데, 효과가 없었다. 이 때 한 수학자가 조종석과 엔진에 손상이 없다는 것은 있는 경우 돌아오지 못했다는 증거이므로 오히려 그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기업을 성공시키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일반 시민이 빈곤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조건의 재설정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는걸까? 내가 원하는 여행을 가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변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선택을 조작할 수 있다. 스키너 Skinner의 조작적 조건화 operant conditioning가 무서운 점은 선택이 외부로부터 유인됐음에도 불구하고 내적 요인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행동을 통제하는 방안은 보상과 처벌이다. 쥐가 한 번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알면 쥐는 버튼을 누른다. 세 번에 한 번, 다섯 번에 한 번 먹이를 주면 실험자는 먹이를 아낄 수 있고 쥐는 계속 버튼을 누른다. 랜덤으로 먹이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쥐는 먹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더 열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노오력을 쏟아부으며 버튼을 누른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든, 대기업에서 승진하는 것이든, 크고 작은 성공이 랜덤이라면 우리는 왜 미친듯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일까?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며 미친듯이 버튼을 누를 것이 아니라 상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아닐까?


기억의 재설정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진화하기 위해 기억을 망각하거나 미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열악했던 몇 십 년 전을 그리워한다. 마치 여행과 같다. 여행 도중에는 비도 와서 추적거리고, 기차는 제 시간에 오지 않은 건지 놓친건지 모르겠고, 소매치기에게 삥도 뜯겼는데 몇 년이 지나면 비가 와서 로맨틱했고, 기차를 놓쳐서 덕분에 주변을 구경했고, 현지인에게 기부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땐 그랬지. 근데 더 심각한 문제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으면 완전히 기억이 재설정 된다는 점이다. 캐나다 사상가 클라인 Klein은 신자유주의가 충격을 이용해 사람들의 생각을 개조한다는 쇼크 독트린 shock doctrine을 주장했다. 예컨대 미국 경우 9.11 테러 사건, 한국 경우 외환위기 사건 후 인간의 기억은 백지상태가 됐고,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비판없이 수용한 것이다. 9.11 사건 이후 미국은 일방주의 노선을 걸으며 정부와 군산복합체가 아프간, 이라크를 침공했고, IMF 위기 이후 한국은 금융이 자유화되고 자본시장은 보호장치 없이 개방되었다.


관심의 재설정


미국의 국방 정책이나 한국의 경제 정책은 그나마 신문에서 접할 수 있지만 거의 접할 수 없던, 이 책을 통해 알게됐던 점은 노동 문제였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1년에 노동자 10만명 당 약 10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EU 회원국의 약 2명에 비해 5배 높은 수치다. 노동자 시위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노동자 부상이나 사망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들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고가 나도 80% 이상 산재 신고가 되지 않고 은폐된다고 한다. 하인리히 법칙 Heinrich’s Law or 1:29:300에 따르면 1번의 사망 또는 중상 사고가 있기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 300번의 무상해 사고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망 또는 중상 사고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으면 예방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란 내가 자주 본 것, 가까이에서 쉽게 접한 것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오류를 말한다. 혹시 내가 아는 사건 말고 놓쳤던 사건들이 더 중요하지는 않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명, 미국인 스티글리츠 Stiglitz와 인도인 센 Sen, 그리고 프랑스 경제학자 피투시 Fitoussi 는 GDP, 1인당 GDP 같은 지표는 의미 없다고 한다. 소득은 상승하는데 삶의 질은 더 낮아졌다면 다른 지표를 봐야 한다. 노동소득분배율보다 법인소득분배율이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는 그래프를 눈여겨 봐야 한다. “평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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