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by 카멜레온

내가 잊혀져도 괜찮아


기억되고 싶은 욕망은 보편적일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유전자가 있는 자식을 낳으려고 하고, 그 유전자를 통해 나는 영생할 것이라는 착각을 가슴에 품고 행복하게 눈감는다. 자식이 아닌 경우 건물이나 재단에, 더 권력욕이 있는 사람은 사회 정책이나 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무관심이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미움보다 더 무섭다. 비의도적인 무관심, 즉 잊혀진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내 존재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슬프고도 무섭다. 이 책의 주인공 어거스터스도 바로 그 잊혀짐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고 한다. 반면 다른 주인공 헤이즐은 그런 생각에 반박한다. 누구나 결국 죽는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결국 죽는다. 역사적 위인도 당신도 죽는다. 역사적 위인이나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죽는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 이런 필연적인 망각이 걱정된다면 그냥 무시하라고 if the inevitability of human oblivion worries you, I encourage you to ignore it 충고한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고있으니까. 한 때 나도 잊혀짐을 두려워했었다. 연인들은 크고 작은 물건과 추억을 기억에 새긴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잊고, 잊혀지고, 잊혀질 수밖에 없고 무(無)로 돌아간다. 모두 다 그렇다. 따라서 잊혀짐은 섭섭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내 소원은 네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장애인도 사랑과 우정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책 속 두 주인공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챙겨주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던 이유는 아직도 장애인들이 그런 기회를 비장애인만큼 누릴 기회가 없기 때문에, 혹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헤이즐은 말기 암 환자로 종양이 폐에 전이돼 늘 산소공급기를 캐리어로 끌고 다녀야 한다. 엄마의 권유로 환우 모임에 가는데 아이작은 안암으로 실명될 위기에 처하고, 결국 실명한다. 아이작은 골육종으로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한 친구 어거스터스를 데려온다. 어거스터스와 헤이즐은 좋아하는 책을 바꿔 읽으며 우정과 사랑을 쌓기 시작한다. 어거스터스는 환우 재단의 소원 들어주기 기회를 자신이 아닌 헤이즐을 위해 쓰는데, 바로 헤이즐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러 암스테르담을 가는 것이다. 둘은 비행기를 타고 작가를 만나지만 그는 굉장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산소통을 들며 암스테르담을 돌아다니다 둘의 사랑의 감정은 깊어져 여행 자체는 행복했다. 헤이즐은 한 때 자신이 곧 터질 ‘수류탄'같다며 주위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어거스트에게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먼저 사망한 사람은 어거스터스였다.


나의 작은 무한대를 함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내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행해지는 가족들의 한 두 문장의 짧은 추도사 말고 누가 긴 추도 연설을 한다면 누가 어떤 말을 남길까. 어거스터스는 사망하기 전, 친구 아이작과 연인 헤이즐을 초대해 자신의 장례식을 예행연습하자며, 그들의 추도사를 듣고 싶다고 한다. 헤이즐의 추도 연설을 어거스터스가 듣고 떠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느꼈다. 죽기 전에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 받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어요.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 외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어요. 물론 0과 2 사이라든지 0과 백만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어요.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아, 어거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길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거야.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나 또한 나의 작은 무한대와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thankful for our little infinity as you gave me a forever within the numbered days. 찰나이면서 영원한 이 순간을 함께해주는 여러분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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