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by 카멜레온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나를 알기 위해 성격 또는 적성검사를 한다. 미래가 궁금해서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을 찾아가고 과거를 확인하고자 사진을 뒤적거린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질문에 대한 답 또는 실마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여행에서 일어나는 여러 돌발 상황에서 내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형성된 게 아니었을까. 성격과 적성도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사주는 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반만 맞다면 동전을 던지지 애초에 찾아갈 이유가 없다. 사진은 정확할까?


정체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간극이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가족이나 친구라 하더라도 관계에 기반해 나의 일부만 보기 때문에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나에 대한 정보를 다 수집해 조합하면 그 또한 나일지도 의문이다. 범죄가 일어나면 주변인물들은 흔히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 “그럴리 없다”라고 하고 그들의 기억 또한 확실할리 없다. 내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는 모두 과거에 기반한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에 대한 내 기억에 의존한다. 하지만 기억이 전혀 나지 않거나 내가 알던 과거가 알고보니 실제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주인공 이름은 기 롤랑이지만 그조차 임의적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흥신소에 자신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러 갔는데 사장 위트는 과거를 찾으려는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냐”며 그에게 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지금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자고 그 곳에 취직시켜준다. 하지만 몇 년 후 위트가 은퇴하면서 기 롤랑은 자신이 직접 자신을 찾아나선다. 바에서 만난 사람을 시작해 누구의 친구, 들은 소문, 누구의 지인, 사진 속 인물, 여권 주소, 누구의 전 남편, 누구의 전 애인, 심지어 일하던 흥신소까지 동원해 자신을 추적한다.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국경을 넘으려 했지만 다들 뿔뿔히 흩어졌고 서로 연락이 끊겼다는 것까지는 찾아낸다. 그 후 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찾았을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無)로 돌아가버린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 길을 어떻게 다시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 산장이 이제는 어쩌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것이 아직 남아 있다 한들...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어쩌면 마침내 증발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창유리를 뒤덮고 있는 저 수증기, 손으로 지울 수도 없을 만큼 끈질긴 저 증기에 불과한 존재가 될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내게는 어찌나 종잡을 수 없고 어찌나 단편적으로 보였는지… 몇 개의 조각들, 어떤 것의 한 귀퉁이들이 갑자기 내 수사의 과정을 통하여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인 모양이지요.


과연 이것은 나의 인생일까요? 아니면 내가 그 속에 미끄러져 들어간 어떤 다른 사람의 인생일까요?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나 역시 남이 아는 나만큼 일면이고 일시적이다. 내 이름, 직업, 경험은 말 그래도 내 이름, 직업, 경험일 뿐이며 내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의 나를 확인한들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언뜻 반짝이는 빛, 잠깐 남을 쫓는 그림자, 곧 증발하는 수증기라면 우리를 통과하는 시간을 역류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게 낫지 않을까. 기억은 해석이다. 지금 여기를 살기로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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