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와 비슷한 사람과 만나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나와 다른, 심지어 정반대의 특징을 가진 사람은 매혹적이다. 그런 도취는 일시적이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착한 소년 리카르도는 나쁜 소녀와의 인연을 40년 동안 이어간다. 그런 끌림은 파멸적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라카르도는 나쁜 소녀가 몇 번 거절해도 다시 고백하고, 떠나면 떠나보내고, 불쑥 나타나면 받아주고, 다른 남자와 두 번, 세 번 결혼하고 헤어져도 언제든지 만나고, 다른 남자에게 신체적 및 심리적 상처를 받으면 병원에 입원시켜주고 옆에 있어준다. 나쁜 소녀가 나이들고 더 이상 예쁘지 않아도 곁에 남는다.
오틸리타
나쁜 여자, 나쁜 남자라는 게 따로 있을까.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만큼, 자신이 기대하는만큼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 애칭은 자기중심적이다. 나쁘다는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설레임과 호기심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은 주지 못하는 감정이다. 두근거림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호기심은 살고 싶다는 의지를 준다. 소년 리카르도와 소녀 오틸리타는 같은 것 - 살아있음과 살고 싶음 - 을 원하지만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페루 출신 소년은 파리에서 살고 싶어 한다. 소녀는 대꾸한다. “그게 네 인생 목표야? 그것밖에 없어? 파리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화가나 작가, 음악가, 배우, 연극 감독을 꿈꾸거나 박사 학위를 받거나 혹은 혁명에 뛰어들려고 해. 그런데 넌 그것밖에, 파리에 사는 것밖에 원하지 않는거야?”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살고 싶은 소녀는 어릴 때 칠레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며 페루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사라지고, 파리에 나타나더니 쿠바로 게릴라 훈련을 떠나며 사라지고, 이어 프랑스 외교관 아내 ‘아르누 부인’으로 사교계를 진입했다가, 사라지고, 런던에서 영국 사업가 아내 ‘ 리처드슨 부인’으로 중혼했다가, 사라지고, 일본 야쿠자 애인 ‘구리코’가 되어 아프리카 등에서 최음제와 마약을 밀매하다가, 또 사라진다. 오틸리타는 인생이 위험이고 모험이지만, 리카르도에게는 오틸리타를 통해 위험과 모험을 경험한다. 위험과 모험은 중독적이다.
리카르도
오틸리타의 행동은 부와 명예를 쫒는 듯하지만 동시에 지루함과 평범함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아르누 부인이 된 후 행복할 줄 알았지만 남편과 남편 친구들을 따라 매일 경마장을 가고, 말과 관련된 대화만 하니 오틸리타에게는 따분하고 혐오스러운 나날들이었다. 반면 리카르도는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를 구사하는 통번역사로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지만 오틸리타의 삶에 비하면 평범하다. 그래서 리카르도는 안다. 둘의 관계가 권태로워지면 오틸리타는 다시 떠날 것이다. “더 재미있고 더 부유하고 덜 따분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준비한 뒤 또다시 엉뚱한 모험을 감행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카르도는 안정된 직정을 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오틸리타가 원한 것처럼 “더 자유롭고 수입이 많은” 직장을 갖기 위해 프리랜서 통번역사가 된 것이다. 리카르도의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통번역사인 살로몬 톨레다노는 통역사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보다 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이라는 존재를 포기할 때에만 존재하는 인간 부류의 동물이다. 항상 이방인을 자처하는 그러니까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고, 어딘가에 있으면서도 없는 사람이 되는 직업이다.”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 사랑이다
“그런 감상적인 싸구려 말은 하지 마, 리카르도” 리카르도가 애정 표현을 하면 오틸리타는 차갑게 대꾸한다. “내 애인이 너뿐이라면 난 거지처럼 입고 다닐거야, 이 하찮은 인간아”, “넌 지금까지 얻은 것에 만족해. 그렇지?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난 네 여자가 될 수 없어. 네가 가진 것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을 테니까. 항상 더 많은 것을 바랄거야” 오틸리타가 자존심 긁는 말을 해도 리카르도는 오틸리타 뿐이다. “그녀는 이 세상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섬세한 여자니까. 그녀는 나의 여왕, 나의 공주, 나의 고문관, 나의 거짓말쟁이, 나의 일본 소녀, 나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야쿠자는 자신의 창녀 오틸리타와 리카르도가 성행위하는 것을 보며 자위를 하고, 리카르도는 이런 야쿠자의 요구를 들어준 오틸리타에게 충격을 받고 드디어 오틸리타를 피한다. 그래봤자 몇 년 후 둘은 재회하는데 오틸리타는 말한다. “감상적인 싸구려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같네.” 리카르도는 말한다. “누구보다 널 사랑해, 나쁜 소녀. 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야. 넌 내게 못된 짓을 했지만 또한 경이로운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어.” 1960-80년대 페루, 프랑스, 영국, 일본을 오가며 혁명, 문화, 히피 문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틸리타-리카르도 관계는 아이러니하다. 돈이 유일한 행복이라며 떠난 오틸리타는 왜 사랑을 주는 리카르도에게 결국 돌아갈까? 사랑을 원하는 리카르도는 왜 고통을 주는 오틸리타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까? 한 편으로는 뻔뻔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마지막까지 사랑 받는 오틸리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