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6 사진
20110426 사진
2011년 04월 26일 폰으로 찍었던 사진
당시에 썼던 글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했어. 모자를 눌러쓰고는 혹시 몰라 바람막이 점퍼를 입었지. 이어폰을 귀에 끼고는 노리플라이 음악을 들으며 집 밖을 나섰어.
평소와 달리 오늘은 뛰어봤어. 내가 얼마나 뛸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 아마 10분도 못 뛰었던 것 같아. 숨이 찼거든. 뛰다 걷다 뛰다 걷다, 내 삶 그대로 같았지. 숨이 차면 숨이 차서 멈췄고, 숨이 편해지면 그게 편해서 뛰었어.
얼마나 뛰다 걷다 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어.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기 시작했어. 손을 뻗어 봤어. 다행히 이 정도는 비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애처롭지만. 갑자기 잊고 있던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어. 아마 비를 맞고 걸어서였나 봐.
여름 장마였던 것 같아. 아님 말고. 사실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라 가물가물하거든. 무슨 얘기냐 묻겠지만. 하여간 그날은 H가 챙겨준 저녁을 먹고 같이 설거지를 했던 것 같아. 갑자기 H가 말했어. 빗속을 맨발로 함께 걷고 싶다고. H와 우산을 같이 쓰고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던 아파트 뒤편으로 갔지.
아스팔트는 비로 흠뻑 젖어있었지. 곳곳에 작은 물 웅덩이도 생겼지. 나와 H는 보란 듯이 슬리퍼를 벗어던지고는 맨발로 뛰었어. 누가 보면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뭐가 좋다고 손을 잡은 채 그렇게 빗속을 뛰었을까.
H는 첫사랑의 이니셜이다. 어린 나이였고, 처음이었기 때문에 순수했던 기억들이 많이 난다. H와는 헤어진 후 꽤 긴 시간이 지나 우연히 친구가 됐다. 어쩌다 한 번씩 연락하는 친구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연애 얘기, 연애 실패담, 일에 관한 얘기, 가족 얘기들을 서슴없이 나눈다. 조카의 갓난아기 때의 모습을 아는 유일한 전애인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작가는 H가 먼저 됐다. 나는 2~3년 뒤 작가가 됐다. H는 그 후 번아웃을 겪었다. 스스로 번아웃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내가 몇 년 뒤 번아웃을 겪어보니 H에게 번아웃이 온 거라는 걸 어렴풋 깨달았다.
H에겐 내게 번아웃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H가 새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온다면, 내 번아웃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든 밤이다.
내일은 바쁠 것 같다.
노리플라이 - Fantasy Train
https://youtu.be/0KBAG8ZS93A?si=m6mLKVWf4TIu64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