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의 조건
글을 공개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2년째.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왠지 모든 조건이 완벽해야 할 것 같았다.
나에게 있어 '쓰기'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영감도 떠오르고,
오랫동안 고민해 온 글감이 있고,
집에 혼자 있어야 하고,
집이 깨끗해야 했고,
체력이 남아 있어야 했다.
내가 글을 쓸 조건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건 그냥 안 쓰겠다는 거지'.
최근 하루키의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그리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직업 작가의 삶이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자유롭거나,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작지만 소소한 행복>에서 하루키는 말한다.
"예를 들면 작가라는 작자들은 밤을 새우기 일쑤고, 줄곧 단골 술집에 드나들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가정은 거의 돌보지 않으며, 게다가 지병 하나둘 쯤은 누구나 갖게 마련이고, 원고 마감일만 되면 호텔 같은 곳에 틀어박혀서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는 족속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밤에는 대개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 매일 조깅을 하며, 한 번도 원고 마감일을 넘긴 적이 없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
물론 작가들 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알만한 대다수의 전업 작가들은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되든 안되든 글을 쓴다. 하루키 같은 작가도 영감을 기다리지 않고 매일 쓰는 것이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에서 그는 과음도 하지 않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으며, 친구와 만나는 시간도 거의 없다고 털어놓는다.
나는 늘 하루키가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에세이에서 그리스로, 미국으로, 옮겨 다니며 글을 쓰는 그의 삶의 방식을 동경하며 조금이나마 볼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매우 흔치 않게, '행복해 보이는 작가'이기에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그는 일본에 있을 때 보다 외국에 있을 때 훨씬 더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기에 외국살이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본에 있으면 여러 가지 잡무나 교제상의 체면 때문에 좀처럼 이 정도로까지 정확하게 규칙적으로 작업을 해날 수가 없다 (...) 그렇기 때문에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지면 언제나 외국으로 훌쩍 떠난다."
외국 생활을 즐기면서, 새로운 것들에 자극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가 그토록 부러운 것이었는데, 일본에 있으면 '잡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었다니...
그는 이어서 말한다.
"매일매일 이런 내향적인 생활로 갇혀 지내다시피 있노라면, 솔직히 말해 내가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실감이 그다지 솟구쳐 오르지 않는다. (...) 그러니 밖으로 나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영어로 얘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아, 참 그렇지. 여기는 미국이었지"하고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매일 책상 앞에만 앉아서 소설을 부지런히 쓰고 있다면, 결국은 세계 어디에 있으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여행도 별로 다니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커피도 끊었다고 말했던 것과 멕이 닿아 있었다. 그야말로, 작품을 위한 삶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럼에도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 그가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장편 소설을 혼신의 주의를 기울여 쓰고, 휴식을 취하며 에세이와 약간의 번역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하루키는 마라톤에도 참가하는 러너이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뭇 정 반대에 있는 것 같은 달리기와 글쓰기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신선했다.
"숨을 지속한다는 것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호흡해 나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호흡을 멈추었다 이었다 하면서도 계속할 것.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 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 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그가 러너라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하루키 같은 세계적인 작가도 특별히 새로운 경험을 좇지도 않고 매일 쓰고, 달리고, 매우 심플한 삶을 살아가는 걸 보면, 글을 쓴다는 것도 정직한 예술인가 보다. '글쓰기의 조건'을 따지기 전에 '매일 책상에 앉는 것', '뭐라도 쓰는 것'이 '쓰는 사람'이 되는 데 유일무이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