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호랑이 虎鵲(호작)》
'케데헌'에 빠진 아이들과 애니메이션 속 "까치 호랑이" 그림을 보러 가자고 하니 어느 미술관에 가자고 할 때보다 들뜬다. "호랑이는 나쁜 관료고 까마귀는 백성이래." 아이가 말한다. 나도 오랜만에 한국미술사 책을 꺼내 확인한 바를 어떻게 알았냐 물으니,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가 학교 수묵화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한다. 한류 애니메이션이 한국의 전통민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아간 것이 놀랍고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더피와 서 씨의 기원, 호작도
극 중에서 진우와 루미, 그리고 저승과 이승의 세계를 연결하는 동물들로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에 대한 인기와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극 중에서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는 조선시대 민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물들로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는 민화를 '호작도'라 부른다.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전령, 즉 메신저로 활약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흔한 예. 해리 포터에서 인물들의 메신저로 야행성, 지혜, 마법의 의미를 지닌 부엉이가 사용되었듯, 보통 까치나 비둘기 같은 이동성이 뛰어난 동물들이 이를 수행한다. 여기에 케데헌은 우리나라 민화 속 호랑이와 까치(그것도 갓을 쓴)를 등장시키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둘은 극 중에서는 이름이 없었지만 후에 제작자들을 통해 호랑이는 '더피'(Derpy), 까치는 '서 씨'(Sussie)로 이름을 부여받으며 더할 나위 없는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로 제작된 '더피와 서 씨'는 모두 매진되었고, 입고되는 날짜에 맞춰 박물관으로 오픈런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국립 중앙 박물관은 8월 평균 관람객이 3만 명에 육박하는 등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9월 26-28일에는 박물관 마당에서 '국중박 분장놀이'에서는 케데헌의 분장한 등장인물의 공연도 준비되어 있고 분장을 하고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을 선정해 사은품을 증정하는 등의 행사도 진행된다. 그야말로 K-pop의 인기가 국립 박물관에까지 들어온 셈이다.
리움미술관 <까치 호랑이> 전에서 볼 수 있는 것
여기에 더해 리움미술관은 수장고에서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민화 <호작도>를 꺼내, <까치 호랑이> 전을 진행 중이다. 비교적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리움 미술관 상설 전에서 <까치 호랑이> 전시실로 들어가자, 외국인들과 아이들,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대여해 주는 이어폰을 끼고 주의 깊게 호작도를 감상 중이었다. 전시된 호작도는 모두 7점으로, 전해지는 최초의 호작도인 1592년작 <호작도>도 최초로 공개되었고 김홍도의 호작도도 공개되었다.
본래 호랑이는 삼재를 막는 동물, 까치는 '희조'로 기쁨의 상징인 새이다. 특히 까치는 작고 날렵하고, 호랑이와 대비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옛 말도 있듯이 까치는 기쁜 소식, 그리고 민중의 목소리를 상징했다. 호랑이와 까치는 개인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동물들이었던 셈이다.
19세기의 호작도는 민화, 즉 궁중회화가 아닌 궁궐에 소속되지 않은 화원이 그린 그림이고 수요자는 당연히 일반 국민이었다. 궁중회화가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면 민화는 일반 대중의 소박한 소망을 익살스럽고 재치 있게 담았다.
그런데 <호작도>를 보다 보면 왠지 호랑이보다는 까치가 우위에 있는 듯하고, 이는 19세기 후반의 그림으로 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까치가 호랑이에게 말을 걸며 전달사항을 전하고 호랑이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한데, 산신이 까치에게 시켜 신탁을 전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호랑이는 몸짓만 컸지 권위가 없고 아둔하며 오히려 까치가 영리하게 호랑이를 조율한다.
추상적인 표현으로 그려진 이 호작도는 피카소의 화풍 같기도 해서 '피카소 호랑이'라고 불린다. 88 올림픽 '호돌이' 마스코트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호랑이는 얌전히 앉아 까치의 '전령'을 듣고 있다. 호랑이의 용맹함이나 권위보다는 순종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위의 호작도가 아마 케데헌의 더피와 서 씨의 도상과 가장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더피'(Derpy)는 '바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서 씨'(Sussy)는 '항상 의심스러운 눈'(sus eye)라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캐대헌속 까마귀의 눈이 여섯 개인 이유
미국 온라인 매체인 '살롱닷컴'(Salon.com)과의 인터뷰에서 제작자 매기 강은 진우가 400살이니,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는 비둘기 같은 메신저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게 보였다고 밝혔다. 진우의 전령을 찾는 과정에서 호랑이와 까치가 채택되었다. 또한 케데헌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레드포드 세크리스트(Redford Sechrist)는 서 씨가 각각 양쪽에 눈이 세 개씩, 총 6개를 가지고 있다고 확인해 주었는데, 왜 6개 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까치가 백성을 대변한다면 그 해답을 찾기는 쉬워진다. 두 개의 눈으로는 부족한 감시자, '항상 의심스럽게' 권력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필요하면 갓을 뺏어가듯, 권력을 앗아갈 수 있는 권력자위의 권력자인 일반 국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I made (the hat) for the tiger, but the bird keeps stealing it"
"호랑이를 주려고 (갓)을 만들었는데 새가 계속 뺏어가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말이다. 호랑이는 본래부터 권위의 상징이었다. 본래 양반만 쓸 수 있었던 '갓'은 진우가 호랑이에게 주려고 만든 것인데, 까치가 뺏어 쓴다. 즉, 호랑이가 아닌 까치가, 자신의 우위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 쓰러트린 물건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호랑이보다는 까치에게 갓이 더욱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다.
이처럼 호랑이는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부당한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19세기에 들어와 까치와 호랑이 사이에 권력관계가 뒤집힌 민화가 많이 그러진 것은 신분제의 동요, 부당한 권력에 대한 반발심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궁중회화보다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 민화다. 신분제 사회에서 일반 국민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을 넘나들며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통쾌하다.
'케데헌'을 넘어서
<민화는 민화다>에서 저자 정명모는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민화의 이야기는 현실과 꿈의 세계를 간단없이 오고 갔다. 민화에는 삶의 연계되어 있는 판타지가 장치되어 있다. 민화의 세계는 현실에만 머물지 않고 꿈의 세계까지 뻗어나간다..... 판타지는 고달 한 현실을 이겨내고 희망의 불씨를 살려나가서 둘 사이의 평형을 유지시켜 주는 균형추 역할을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민중들의 낙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화를 통해 삶과 판타지를 오고 갔던 우리 조상의 그림과 염원이 이렇게 전 세계로 확장되어 사랑받을 줄 누가 알았을 까. 케데헌의 인기가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앞서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 외국인들도 찾는 이곳> 기사에서도 다뤘듯, 요즘은 서울 유수의 미술관 어디를 가나 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지만 '더비와 서 씨'굿즈를 사러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도, 그 관심이 민화 '호작도'로는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리움 미술관 전시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열기에 비해서는 한산했다. 케데헌에 빠진 외국인 지인들도 더비와 서 씨가 한국화에서 가져온 캐릭터라는 것을 알지는 못했다. 인기가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인기가 아닌 한국 문화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국문화의 깊이도 전달될 수 있도록 바라본다.
https://www.salon.com/2025/07/02/kpop-demon-hunters-derpy-tiger/
https://www.leeumhoam.org/leeum/exhibition/89
https://www.yna.co.kr/view/AKR20250909149200005?input=119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