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하 '국중박')이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국민 문화 향유권 확대'라는 기조로 완전 무료도 전환되었던 궁중박의 유료화를 예고했다. 사실 국립박물관이 무료인 곳은 드물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17 유료(약 2500원), 뉴욕현대미술관은 32달러(약 42000원), 이탈리아 유수의 박물관들도 2-3만 원대의 입장료를 받는다.
대다수가 국가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입장료와 굿즈판매, 기업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무료 국립 박물관, 미술관으로 자주 거론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이기 때문에 누리는 이점과 무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까? 이를 논의해 본다면 국중박이 유료화로 나아가기 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국중박이 유료화된다고 했을 때 처음 떠오른 곳은 영국에서 누리던 문화적 사치의 시간들이었다. 잠시 영국에 체류할 당시, 영국의 '무료'박물관, 미술관은 돈 없는 유학생들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위생관리가 안 되는 공공화장실도 유료인 영국에서 '무료'는 꽤 많은 것을 상징했다.
깨끗한 화장실과 추위에서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는 쾌적한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지친 여행객과 유학생을 품어주는 곳이다. 나아가 언제든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 주었던 명화들은 깊이 새겨졌고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서 만난 19세기 영국미술의 독특함은 이후 미술사를 전공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살인적인 물가로 커피 한 잔 사 먹기 두려웠던 영국에서 만약 미술관과 박물관 입장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국가문화유신인 런던탑 입장료는 현재 35파운드, 버킹엄 궁전은 32파운드로, 원화로 환산하면 6만 원 정도다. 문화유산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입장료를 요구하기에 많은 여행객들이 무료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필수코스로 다녀가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입장료가 그대로 박물관, 미술관에 적용됐더라면, 영국미술이 나의 삶의 경로가 미술사로 변화할 계기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이 뉴욕과 더불어 미술의 중심지가 된 데에도 이 '무료 정책'이 한 몫했다고 생각된다. 인류의 미술사의 모든 중요 장면을 품고 있기에 영국의 화가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드나들고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스스로 미술교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의 미술관에는 지나칠 수 없는 어두운 단면이 존재한다. 식민지 약탈, 식민지배로 얻은 수익으로 성장한 자본가들의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 등지의 발굴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박물관으로 모이게 된 작품들을 보며 찬란한 인류의 역사 앞에서 마음이 한구석이 아리다. 마치 우리나라의 보물을 일본 미술관에서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셔널갤러리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도 많이 소장되어 있다. 19세기 영국이 식민지를 거느린 '대영 제국'일 당시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탈리아 그림을 헐값에 사 오면서 영국에서 '그림들이 더 잘 보존될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가장 참혹한 사례는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파르테논 신전이다. 1801년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7th Earl of Elgin)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절반 가까이의 조각을 영국으로 반출해 가져왔으며 이를 영국 박물관이 사들였다. 1832년 그리스 독립 이후 문화재 요구하고 있으나 이 또한 "전 세계인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반환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영국의 수많은 약탈품과 헐값에 사들인 걸작들은 모두에게 '무료'여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국중박은 어떤가. 순수 우리나라 보물로 채워진 박물관이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무료공개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홍보하기 위해서' 국중박이 무료여야 한다는 입장도 있지만, 국중박 관람객 중 외국인은 10프로가 채 되지 않으며, 외국인들에게도 한 나라의 보물이 모여 있는 박물관 입장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17 유료(약 2500원), 뉴욕현대미술관은 32달러(약 42000원), 이탈리아 유수의 박물관들도 2-3만 원대의 입장료를 받는다. 대다수가 국가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입장료와 굿즈판매, 기업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 정도의 금액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중박에 일부러 찾아오는 관람객들은 소정의 관람료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중박은 연간 500만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박물관으로 성장했음에도 몇 가지 한계점이 지적되었다. 1. 예산부족으로 인한 국가 유물 구매의 한계 2. k-컬처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람객은 5% 로에 불과 3. 미술관 전문인력, 안전인력 부족 4. 뮷즈(박물관기념품) 판매 수익이 박물관으로 귀속되지 않는 점 등이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국중박이 독자적 자생력을 가진다면 해결될 문제들이다. 박물관의 자립과 독자성을 갖추기 위해선 박물관의 경제력 확보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나아가 유료화를 찬성하는 이유 중 가장 견고하게 뒷받침되어있는 것은 국중박에 대한 신뢰이다. 미술사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수없이 드나들었던 국중박을 15년간 지켜본 결과 국중박은 때마다 놀라운 성장을 보여 주었다. 초등학생 때 보던 따분한 국중박과는 거리가 멀어서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미술의 결정체를 보는 듯한 울림이 깊은 사유의 방, 몰입형 체험형 전시, 박물관에서 하는 음악회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 있어 늘 예약 전쟁인 어린이 박물관, 창의력에 끝판함을 보여준 분장대회까지... 관람객 500만을 만들어낸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앞으로 독자적인 수익구조를 가지고 더 많은 전문 인력과 안전인력, 홍보인력이 증대되고, 신선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문화 정체성을 구축해 나아갈 국중박을 기대해 본다. 혹시 알까. 한국에 유학온 외국학생이 국중박을 수시로 드나들며 한국미술에 사랑에 빠지게 될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