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한 행복
[모이다](제가 진행하는 워크숍입니다)에서 만난 그녀는, 이미 이메일로 한 번 교류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때문에 더 반갑고 편하게 느껴졌는 지도. 세 시간 남짓 진행된 [모이다] 시간도 그녀의 색깔로 물들었고, 나눠줄 이야기가 참 많은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궁금해했다.
홍대의 유명한 서점에 가면 언제나 밝게 맞아주는 사람, 그 밝음 속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저는 얘기하는 걸 엄청 좋아해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강연도 해보고 싶은데 아직 그런 자리가 제게는 없네요.
어떤 강연을 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고자 하는 길이 워낙 확고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잖아요. 나름 확실한 길을 가고 있다고 자부했던 저조차도 이직하는 과정에서 많은 방황과 경험을 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 직장이 출판사였어요. 전 무조건 ‘책’이거든요. 하지만 시작과는 다르게 어느새 그 자리에 있는 제 가슴이 뛰질 않더라고요. 혼란 끝에 퇴사했는데 바로 새 직장을 찾지 않고, 저만의 100일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중 첫 한 달간은 집에 내려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요양만 했어요. 그 다음 달은 국내여행만 줄기차게 했고. 그리고 마지막 한 달은 관심 있는 강연이나 워크숍 등을 몽땅 찾아다녔어요. 자기계발에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존경하는 연사님들이나 작가님들을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곤 했지요. 하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한 정답을 내려주시진 않더라고요. 사실 그럴 수가 없죠. 하지만 이런저런 조언을 들으면서 ‘가슴 뛰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됐어요. 그게 제 발목을 너무 잡아왔던 것 같아요.
특히나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간접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단편적으로 출판사라는 회사를 놓고 보면, 그 안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지만 밖에서는 잘 모르잖아요. 간접 경험도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찾아다녀야 해요.
전 기획은 자신 있어요. 디테일하고 체계적인 계획은 기가 막히게 세우는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건 하나도 없어요. 검색하고 정보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너무 즐거운데, 그대로 자료로 남아있는 거죠. 이런 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한 것 같아요. 끈기도 부족하고.
전 어렸을 때부터 손톱을 항상 바짝 깎았어요. 손톱의 하얀 부분이 안 나오도록. 조금이라도 자라 있는 걸 못 보는 거예요. 심지어 동생이 자고 있을 때 몰래 깎아주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이게 완벽주의와 끈기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큰 맘 먹고 두 달 가량 꾹 참아봤는데, 생각보다 잘 길러지는 거예요.
이 노트들도 마찬가지예요. 전 노트를 쓰다가 페이지를 찢어야 하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새 노트를 사서 썼어요. 집에 쓰다 만 노트가 수두룩하죠. 하지만 회사에서 쓰는 작업 노트는 예쁘게만 쓰기가 불가능하거든요. 바쁜 와중에 노트를 마구마구 끝까지 다 썼고, 그 사실이 너무 뿌듯했어요. 그래서 아직도 버리지 않고 이렇게 간직하고 있어요. 이렇게 끝까지 쓴 노트가 이젠 6-7권 정도 되어가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지하고, 그걸 고치기 위해 작은 과제를 던지는 자세가 좋네요. 작은 것에서도 성취감을 느낄 줄 알고, 스스로 칭찬해줄 수 있는 정신이 건강한 것 같아요.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면 결국 제자리걸음 하기 쉽잖아요.
제 삶의 모토는 ‘소확행’이에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출판사를 그만두고 땡스북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기준이에요.
전직장에서는 강한 성취감만큼 강한 고통이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서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죠. 머릿속이 복잡하길래 선택지를 만들어 봤어요. 포항으로 내려가 논술강사를 한다, 다른 출판사를 다닌다, 서점에서 일한다, 등의 옵션들을 놓고 제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 거죠. 그 기준들은 무궁무진해요. 일의 재미, 강도, 연봉, 공부를 더 해야 하는지, 어떤 동네에 있는지 등등. 처음에는 모든 가능성에 욕심을 부렸는데, 막상 종이에 써보니까 저에게 맞는 일이 눈에 딱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땡스북스에 입사하게 됐고, 사회의 잣대보다는 제가 세운 기준으로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접하고는 ‘이, 이거다.’ 싶었죠. 그 뒤로 쭉 저의 모토가 되어주고 있어요.
누구나 가치관은 다르지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맞지 않는 목표를 세우고 버거워하는 사람들은 그 리스트를 적어보고 기준치 조정을 하는 게 좋겠네요.
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뭘 강요할 수는 없어요. 저도 제 방식이 잘 맞았으니까 동생에게 자꾸 조언을 해주려고 했는데, 엄마가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너는 네 삶에 만족을 하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동생은 동생만의 기준이 있을 거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는 걸 다시 깨달았죠.
결국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하며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물론 소화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하겠지만.
마스다 미리는 제가 생각하는 ‘소확행’에 정말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살면서 지나치기 쉬운 작은 감정들을 설명받고, 공감하면서 위안을 받곤 해요. 이 책은 배경이 서점이라 읽었는데, 주인공이 아동 기획전을 열어요. 주변에서는 별로 성과도 안 보이는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추궁하지만, 주인공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 행복해하거든요. 결과에 상관없이 제가 즐거울 수 있는 걸 찾아가는 게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일 말고 또 어떤 즐거운 것들을 찾아보았나요?
제 인생 중에 올해(2014년)가 가장 행복했던 해였어요. 결혼도 한몫했죠. 저는 집착이 좀 심해요. 저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는 것에 예민한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인관계가 없어요. 혼자 있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싸울 일이 없어요. 둘 다 극단적이지만 그래서 천생연분인 거죠.
요즘에 저보고 어떤 고민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드릴 대답이 없어요.
하지만 가끔은 너무 큰 행복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지진 않나요?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언제 또 우울해질지 모르거든요. 행복해도 불안하고, 불행해도 희망 어린, 참 이상한 감정을 경험하기도 해요.
별로 그렇지 않아요. 전 기준이 참 낮아서, 그러다 보니 실패에 대한 경험도 그다지 없어서 그런 것 같네요. 엄청난 삶을 살진 않아도 이대로 행복하게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 부모님은 ‘꿈을 높게 가져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 꿈에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저는 언제나 제 목표에 미달인 거예요. 행복이 목적이라면 기준을 낮게 잡는 편이 현명하겠어요.
이제는 제 기준을 찾아서 스스로 만족스럽고 행복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사회적 잣대를 들이밀면 할 말이 없어져요. 세상의 언어로 규정지으려 하면 힘들어지는 거죠.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피드백에 대응하면서 지칠 때가 있어요.
저희 부모님도 제가 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시는 건 아니에요. 옛날 친구들과의 이해도도 현저히 낮아졌어요. 하지만 점점 가치관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는 그런 스트레스가 없어졌어요.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으니까요. 반복적인 피드백에 대해서는 당연히 예민해지게 되죠. 사회적인 동물인데.
서점은 언제 오픈할 계획인가요?
사실은 지금 당장에라도 시작하고 싶지만, 요즘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겨서 한차례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일하는 서점에서 경험을 더 쌓고 싶기도 하고요.
생각하신 컨셉은 있어요?
카테고리를 정하진 않았어요. 단지 확실한 건, 제가 읽어본 책만 판매할 거예요. 제 기준으로 검증된 서적. 그리고 책마다 저의 한 줄 평을 달아놓고 싶어요.
하지만 책방만 운영해서는 유지가 힘든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이에요. 예를 들면, 일본에 [모리의 도서실]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야간 도서실이에요. 간단한 음식과 술을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죠.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
결국엔 저만의 컬렉션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책이었으면 좋겠고.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책만 갖고도 서점 하나는 거뜬히 차릴 수 있을 거예요. 집안이 난리거든요.
저도 책을 많이 사고 싶은데, 대형서점에 가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베스트나 스테디셀러 존으로 향하고 있어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책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골라야 할지 난감하거든요. 조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대형서점에 가질 않아요. 베스트나 스테디가 마케팅으로 생기는 거라 신빙성이 없거든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책이 너무 많아서, 다 뒤져보지 않는 이상은 원하는 책을 찾기가 힘들죠. 그래서 전 무조건 작은 책방에 가요. 요즘에는 컨셉이 뚜렷한 책방들이 많으니까 그중에 자신에게 맞는 곳을 발견하면 보석 같은 책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게 되죠.
옷 쇼핑하는 것과 같아요. 백화점에 가면 매장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구매하기 힘들잖아요. 편집숍에서 쇼핑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1월(2014)에 가졌던 [모이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당당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몸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모습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듬는 사람, 그 모습이 그렇게 밝게 보였나 보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그 기준을 제대로 찾은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손톱을 길러보든, 친구를 찾아보든 당신만의 방법으로 그걸 찾고 나면 좀 더 세상 앞에 당당해질 수 있을 거다.
소확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