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아네이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보경 인터뷰

자랑스러워지는 방법

by 룬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처음부터 황금 옷을 입고 반짝거리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먼지처럼 흩날리는 세상의 많은 시간과 기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쉬이 판단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도 묵묵히 손에 쥐어진 모래알을 진주로 만들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다.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자부심이 느껴져요.

리아네이처는 저뿐 아니라 전 직원(20명 정도로 작은 회사지만)이 모두 자부심을 갖고 일해요. 좋은 제품을 좋게 만드는 게 자랑스러워요.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제품이 순식물성, 무방부제이거든요. 동물성 재료는 전혀 안 써요. 가축은 사육하면서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에요. 유기농 식물만 쓰는데, 245가지 성분검사를 거치고, 그중에서도 농약 검출이 제로인 것만 써요. 재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죠. 그래서 저희 화장품을 이루는 성분이 참 간단해요.
디자인이라는 게, 별로인 제품도 좋은 이미지로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리아네이처에서의 디자인은 좋은 제품을 더 좋게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 참 뿌듯해요.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다면, 유통기한도 짧은 거 아닌가요?


아뇨, 다른 화장품과 똑같아요. 리아네이처만의 비법이지요. 천연 꿀을 생각해봐요. 자체적으로 수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상온에 보관해도 상하지 않죠. 그런 원리에서 착안한 보존방법을 개발했어요.


정직하고 좋은 화장품인 만큼 가격이 높을 것 같아요.

저희는 장사하려고 만든 브랜드가 아니에요. 이영애 씨가 임신하면서 아이들과 직접 쓰시려고 만든 거죠. 이미지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겠다 하시는 분들 분명히 있을 텐데, 실제로 쓰이는 재료를 따져보면 절대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니에요.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유통구조 때문이에요. 리아네이처는 삼청동 직영매장만 운영하면서 중간 마진을 많이 생략하거든요. 퀄리티 유지는 당연하고요. 좋은 제품을 잘 소개하고 싶을 뿐인데, 그러려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리아네이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처음에는 단순한 패키지 디자인 업무였어요.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콘텐츠가 없는 상태더라고요. 콘텐츠를 먼저 만들어야겠다- 해서 박사님과 함께 개발한 게 가장 처음에 출시된 하드타입 클렌저예요. 그런데 연구 중에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됐어요.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래도 전공이 가구 디자인이다 보니 조금씩 개입을 하게 됐는데, 하루는 시공하시는 분이 벽 거울을 물어보셔서 심플한 사각 거울을 달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퇴근했죠. 결과가 어땠을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때 깨달았어요. 모든 결과물이 나의 기록으로 남겠구나…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날 밤을 새워서 회장님께 할 피티 준비를 했죠.


하지만 역할이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권한이라던가 급여도 모호했을 텐데, 자기 일이라는 확신이 들던가요?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라는 걸 알아차린 거죠. 패키지 디자인이라는 일이 주어졌지만, 사실은 브랜딩이었던 거예요. 스토리부터 제품, 인테리어, 패키지, 영상, 음악 등 모든 요소가 총체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개념이 생소하니까 그냥 패키지 디자인이라고 하셨던 거예요. 브랜드의 요소들을 각각 별개의 것으로 쪼개서 생각하는 거죠.

디자이너들은 프리뷰(이미지를 미리 상상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일반분들은 결과물로 직접 보여드려야 이해할 수 있어요. 앞단에서 개념이나 용어를 갖고 대립하게 되면 디자이너의 잘난 척으로밖에 안 보여요. 전 그래서 개념으로 설득하지 않아요. 결과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도 막연한 상태에서 올인한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요.


제가 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지는 게 싫어요. 그래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제 태도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들리는 것보다 보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팀원들이 있어서 덜 하지만, 시작할 때는 정말 고독했어요. 브랜드의 실루엣이 없는데 제가 모든 결정을 내려야 했거든요.

하얀 매장에 나무 가구가 들어왔어요. 가구를 검게 칠하기로 하고 붓을 드는데, ‘이게 옳은 판단일까’, 정말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시간도 없고 상의할 사람도 없으니까 오히려 용감해지더라고요.


직관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나요?


제 취향이 기준이었어요. 리아네이처가 이영애 씨의 단아하고 한국적인 이미지를 많이 닮았다고 하시지만, 일부러 부각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서 만든 거예요. 제가 은근하게 부드러운 톤들을 좋아하거든요. 세라믹이라는 소재도 그렇고, 이 안에 담긴 모든 것이 그래요.

궁지에 몰리면 더 감각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죠.


일과 사람도 연이 닿아야 되는 것 같아요. 천생연분이네요.

남 몰래 운 적은 없었나요?


울었죠. 하지만 힘들어서 우는 건 아니고, 퀄리티가 안 나오면 그렇게 속상해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겉으로 보기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을 감내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 그것 자체도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는 반면처럼 마냥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는 거고. 나날이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단계에 이르러도 어려움은 끊임없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자신의 상황에서 평정심을 찾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인간은 평정해질 수가 없어요(웃음). 중요한 건 그 상황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라는 거예요. 하지만 어떻게 항상 즐거울 수 있겠어요. 저도 언제나 제가 가는 방향을 의심해요. 하지만 매 순간 집중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그때 난 즐기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제 포지션에 대해 자주 물어봐요.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건지, 프리랜서인지 등. 하지만 전 타이틀에 신경 쓰지 않아요. 리아네이처가 저고, 제가 리아네이처인 걸요. 그래서 결과에 더 즐거워하고 속상해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름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한 거죠.


저도 한때는 제 직업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 이름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제가 실제로 하는 일이 쌓이고 다듬어지면서 자체적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타이틀이 알맹이를 넘어서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만 내적 정의는 있어야 해요. 자신의 성향,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 등을 알고 있어야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도 자기 일처럼 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화장품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그녀는 화려하게 차려입지도, 화장을 진하게 하지도 않았지만 진심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자신의 현재를 사랑할 줄 알고, 과거에 감사할 줄 알며, 미래에 매달리지 않는 정신 때문이리라. 때 묻지 않은 좋은 것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은 대화를 통해 더욱 밝게 드러난다.

이렇게 멋진 것을 만들게 되기까지는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열정과 성실로 빚고 인내로 다듬어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세상의 언어에 연연하지 않고 험한 자갈길도 콧노래를 부르며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결국 반짝이는 것은 황금 같은 것이 아니라 정직한 땀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아네이처

www.lyanature.com

매거진의 이전글[땡스북스] 매니저 정지혜 인터뷰